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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로봇 휴보야, 재난을 부탁해

입력 | 2015-06-09 03:00:00


로봇(Robot)은 20세기 신조어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가 1920년 발표한 희곡 ‘R.U.R(Rossum‘s Universal Robots)’에 처음 나온다. ‘강제된 노동’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슬라브 말(Robota)에서 차용했다. 작품 내용은 한 공장에서 영혼만 없을 뿐 인간과 꼭 닮은 로봇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신해 궂은일을 도맡은 로봇들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지만 결국 그들은 인간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만든 인간형 로봇 ‘휴보’가 세계 최고의 재난 대응 로봇에 뽑혔다. ‘로봇 올림픽’으로 알려진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 로보틱스 챌린지의 정상에 올랐다. 미국 일본 등 로봇 강국을 제친 휴보는 한국 로봇의 대명사이자 자존심이다. 일본 혼다에서 1997년 세계 최초로 두 발로 걷는 로봇 ‘아시모’를 개발했다는 소식에 오 교수는 제자들과 로봇 연구를 시작했다. 2004년 휴보 첫 모델이 태어났다. 아시모 개발에는 15년에 걸쳐 3000억 원, 휴보는 3년간 8억 원이 들었다. 휴보는 2009년 뛰기에 성공했고, 2012년 춤을 추는 등 발전을 거듭했다.

▷이 대회에서 휴보는 역전 드라마를 썼다. 미국항공우주국 등 6개국 24개 팀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본뜬 경기장에서 8개 과제를 놓고 경쟁했다. 첫날 6위로 뒤처졌던 휴보는 다음 날 능숙하게 자동차를 운전하고 손으로 밸브를 돌려 잠그고, 계단을 성큼 오르는 등 44분 28초 만에 완주했다.

▷초기 공상과학영화에서 로봇은 금속제 몸통에 음성 변조기를 거친 듯한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현실은 다르다. 제조업 군사 의료 우주탐사 등에서 로봇은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 경쟁력의 척도로 평가받고 있다. 의료 분야의 경우 수술 로봇은 물론이고 힘 좋은 간병 도우미 로봇도 개발됐다. 세계 최강의 로봇일꾼 휴보가 어서 진화하면 좋겠다. 메르스 같은 재난이 훗날 발생하면 지금처럼 속수무책이 아니라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될 수 있도록.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