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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병원 ‘76번 환자’ 긴박한 대응

입력 | 2015-06-09 03:00:00

[메르스 확산 고리를 끊자/의료진-정부]
“삼성병원 간적 없어요” 환자 거짓말… 의사 의심 안했으면 사태 더 커질뻔




긴장 속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출입구에서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이 보호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응급실 외부에 임시 진단실을 설치해 응급실 출입자의 메르스 감염 여부를 사전 조사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평택성모병원에 이어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한 대량 감염으로 메르스 환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메르스 확산 방지의 관건은 병원 내 대량 3차 감염의 연결 고리를 끊는 것.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6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에서 벌어진 76번째 메르스 확진환자(75)의 상황은 의료기관의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긴박했던 2시간… 의료진의 의심이 주효

76번 환자가 건국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때는 6일 오전 10시쯤. 서울 송파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76번 환자는 대퇴골 골절상을 입고 5일 오후 4시쯤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에 입원해 하룻밤을 보낸 뒤였다. 건국대병원 의료진은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대응 지침에 따라 고령인 환자에게 열과 기침이 없는지 체크했다. 다행히 관련 증상은 없었다. 의료진은 또 물었다.

“혹시 삼성서울병원에 최근 가신 적은 없나요?”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의료진은 76번 환자를 오후 4시 다인실 병동에 입원시키고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오후 6시 환자가 고열 증세를 보이자 감염내과 의료진이 의심을 품었다. 이어진 질문에 환자는 27, 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삼성서울병원 대량 감염의 원인이 된 14번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고령의 환자가 고관절이 골절된 경우 수술이 필요하다. 수술받지 않으면 남은 생을 걷지 못할 수도 있어 건강을 크게 해친다. 누워 지내 운동량이 부족하면 신체활동 능력이 급격히 떨어져 몇 개월 내에 사망하는 경우도 흔하다. 수술이 급하다고 생각한 환자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고 말하면 수술에 차질을 빚을까 봐 사실을 숨긴 것이다.

의료진은 삼성서울병원에도 확인을 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76번 환자가 당시 14번 환자와 같은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은 것이 맞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격리 대상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의료진은 이때부터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됐다고 가정하고 관련 조치를 진행했다. 환자는 중환자실 내 1인실에 격리됐다. 또 2시간에 걸쳐 응급실을 소독하고 오후 8시 응급실 전체를 폐쇄했다. 이 사이 76번 환자의 메르스 검사에 들어갔다. 76번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환자와 의료진 명단을 질병관리본부에 알렸다. 또 환자가 거쳐 간 강동경희대병원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의료진의 메르스 의심부터 응급실 폐쇄까지 긴박했던 두 시간이었다.

건국대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의 집요한 질문이 아니었으면 이런 경우 메르스를 가려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환자 입원했던 요양병원은?

76번 환자와 접촉한 것으로 의심되는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49명. 이들은 병동을 통째로 비운 공간에 격리 조치됐다. 76번 환자가 입원했던 병동에서는 옆 병실과 76번 환자를 돌본 간호사의 활동 영역 안에 있던 환자를 병원 한 개 층을 통째로 비워 격리했다.

이렇게 모두 147명이 격리 조치됐다. 6일 오전 6시 반경 76번 환자는 메르스 1차 양성, 7일 오전 확진 판정을 받았다. 7일 건국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해하는 입원 환자는 원하는 경우 퇴원 조치했다. 강동경희대병원에서도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 감염 우려가 있는 의료진과 환자 239명을 격리 조치했다.

한편 76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진료(지난달 27, 28일) 뒤 머물렀던 서울의 한 요양병원은 현재 접속이 폭주해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다. 6층 규모인 이 요양병원은 60개 병실, 284개 병상을 갖췄다. 의료진은 의사 8명, 간호사와 간호보조사 5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환자와 의료진을 합쳐 최대 340명가량이 감염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76번 환자는 병원에 왔을 당시 열이 없었지만 몇 시간 뒤 열이 오르는 등의 증세를 보였다는 게 건국대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 관계자의 공통된 말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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