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김수자는 프랑스 파리 남동쪽 변두리에서 파리 중심부 사이를 이동하며 보따리 트럭 이주 퍼포먼스를 가졌다. 이를 기록한 비디오 작업 ‘보따리 트럭-이민자들(Bottari Truck-Migrateurs)’(2007년·그림)에서 보듯 작가는 보따리 짐을 트럭에 잔뜩 쌓아놓고 그 위에 앉아 있다. 그는 이민자들에게서 수집한 헌 옷과 천으로 만든 보따리를 실은 낡은 트럭을 타고 파리의 역사적 장소들을 돌아다녔다.
퍼포먼스의 여정은 파리의 외곽인 비트리에서 시작하여 파리 도심을 돌아 성 베르나르 성당에까지 이르렀다. 수집한 헌 옷과 천의 꾸러미들은 프랑스 내의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나타낸다. 여정의 종착지인 성 베르나르 성당은 1996년 불법 이민자들이 성당 문에 쇠사슬로 자신들을 묶었던 저항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김수자의 퍼포먼스는 이산(離散)과 더불어 노마드 주체를 떠올리게 한다. 노마드가 글로벌한 현대 주체로 부각된 지 오래다. 짐 보따리가 갖는 이주의 메타포는 문화적 차이와 무관하게 보편적이다. 김수자는 이러한 보편성에 호소하면서 한국의 고유한 보따리를 세계적으로 만들었다. 신세대의 눈에 ‘촌스러운’ 보따리들은 우리의 6·25전쟁과 난민의 역사적 아픔도 다 함께 싸안고 있는 거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김수자의 작업은 우리 안에 뿌리를 둔 한국의 미감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좋은 예다.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중심을 잘 잡으면 이겨낸다. 달리는 트럭 위 미동도 없는 작가의 뒷모습처럼.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