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임종현 포토그래퍼 김현진 촬영협조 서교동모형다방(02-322-7230)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장난감 같은 걸 가지고 노니?”
만약 누군간 이런 소리를 한다면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 어른들이 장난감을 구매하는 게 전혀 이 상하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키덜트’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키덜트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 (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장난감이나 만화영화, 캐릭터 의류나 액세서리를 즐기는 어른들을 키덜트라고 부른다.
키덜트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시장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에디터는 키덜트 문화에 대해 듣기 위해,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키덜트카페 ‘서교동 모형다방’을 찾아 장난감 마니아 두 사람을 만났다.
대담을 나눈 이원희(31세. 강서구) 씨는 이 카페의 대표이고, 이한솔(30세. 강동구) 씨는 이 카페의 단골손님이다. 이들은 키덜트 문화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원희>
전 어려서부터 장난감을 유달리 좋아해 장난감 가게를 하고 싶다는 꿈을 항상 꿨었어요. 그런데 저랑 친한 ‘세동’이란 친구는 홍차를 워낙 좋아해 카페를 차리고 싶어 했죠. 둘이 막연하게 대화를 나누다, 장난감과 카페를 합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 고심 끝에 동업해서 ‘키덜트카페’를 차리게 된 거죠.
Q. 장난감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원희>
사람마다 장난감 사용법이 다 달라요. 그래서 매력도 각각 다르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장난감의 캐릭터를 소유하고 싶어 계속 수집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취향에 맞게 장난감에 페인팅하거나 옷을 바꿔서 꾸미는 사람도 있고, 장난감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한솔>
다들 만화든 영화든 좋아하는 작품이 있잖아요. 거기에 나오는 로봇이나 캐릭터들은 참 멋지고 매력적이죠. 그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만져지는 장난감으로 모으는 기쁨이 큰 것 같아요.
Q. 요즘 키덜트 문화가 뜨고 있잖아요.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른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한솔>
사실 키덜트라는 말 자체가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이 장난감에 대한 흥미가 있는 것 같거든요. 저희 또래들은 어린 시절에 만화를 굉장히 많이 봤잖아요. 그런 추억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른이 됐을 때도 자연스럽게 장난감을 구매하는 것 같아요.
<원희>
맞아요. 저희 나잇대 친구들은 어릴 때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TV에서 만화영화를 참 많이 틀어줬었죠.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장난감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TV에 만화영화도 별로 안 하는 것 같고, 애들도 학원 다니느라 바빠서 어른이 됐을 때 키덜트가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한솔>
전 신기한 게, 고등학생 때는 장난감을 사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때는 내가 다 컸다고 생각하고 장난감을 사는 행위가 유치하고 부끄럽다고 느꼈나 봐요. 하지만 군대까지 다녀오고 20대 중반이 돼서는, 내가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숨길게 뭐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사게 된 것 같아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저와 같지 않을까요?
<(좌부터) 키덜트 카페의 단골손님 이한솔 씨(30)와 카페주인장 이원희 씨(31)>
<원희>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분명 어른들도 장난감을 좋아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닌데,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여기거나 주위 시선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장난감을 사려는 마음을 억제시킨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스스로를 키덜트라고 말하며, 집에 소장하고 있는 장난감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죠. 그러다보니깐 키덜트에 대한 인식도 점차 좋아지게 됐고요. 때문에 2000년대 중반부터 장난감 시장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한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레고도 좋아하는데, 2000년대 중반쯤 사러 갔을 땐 매장에 애들이 많았지만 언젠가부터는 대부분 어른들만 보이더라고요. 구매하는 사람도 많아졌고요. 이런걸 보면 장난감을 즐기는 어른들이 많이 늘어난 거겠죠.
Q. 가장 아끼는 장난감은 어떤 것들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솔>
전 건담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중에 ‘샤아’라는 캐릭터를 제일 좋아해요. 주인공보다 더 좋아하죠. 그리고 샤아가 타는 상징적인 기체가 ‘자쿠2’입니다. 그래서 제가 건담 캐릭터를 모을 때 처음 샀던 게 자쿠2 로봇이에요.
그리고 슈퍼히어로들 캐릭터도 많이 좋아하는데, 그중 스파이더맨을 제일 좋아해요. 그 이유 역시 캐릭터 때문이에요.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갑부도 아니고, 외모도 평범한 소시민이라서 동질감이 느껴지잖아요. 옷도 멋있고, 거미줄을 쏘면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너무 멋지고요. 그래서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있는 다양한 상품들도 모으고 있습니다.
<원희>
전 원피스 만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마니아라서 만화책도 전부 소장하고 있고 자주 보죠. 그러다 보니깐 원피스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가릴 것 없이 다 좋아해요. 원피스 캐릭터 피규어들도 계속 모으죠. 새로운 게 나오면 또 사고 싶고요. 그리고 저 역시 건담도 좋아하는데, 키덜트라면 거의 대부분 건담을 좋아하니깐 별로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네요. 저는 건담의 특정 캐릭터를 좋아하기보다는, 장난감의 외형이 멋진 걸 주로 삽니다.
Q. 이 키덜트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원희>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소개된 자료를 보고 오시는 분들도 있고, 그냥 지나다니시다가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고 다양해요. 그런데 키덜트카페에는 장난감 마니아인 분들만 올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는 않아요. 오히려 마니아 분들보단 집에 장난감 한두 개 정도만 있고, 밖에서 장난감 보는 거 좋아하면서 가볍게 즐기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저희 가게는 음료로 인한 수입보다 장난감판매로 인한 수입이 더 큰데, 장난감들은 마니아 분들이 많이 사 가주시죠.
<한솔>
전 강동구에 살아서,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데도 자주 와요. 장난감이 예쁘게 진열된 분위기가 참 좋고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아요. 몇 번 오다 보니 여기 사장님들과도 친해져서 단골이 됐죠.
Q. 한국에서 키덜트 문화가 주목받은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나요?
<원희>
이 키덜트 문화라는 게, 만화를 많이 보고 자란 우리 세대가 어른이 되어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서 생긴 것 같아요. 동전을 넣고 돌리면 장난감이 나오는 걸 밴딩머신이라고 하고 거기서 나오는 장난감을 캡슐토이라고 해요. 근데 이 업체가 흑자를 내기 시작한 게 몇 년 안돼요. 그만큼 키덜트 시장이 커진 지 얼마 안 됐죠. 하지만 매출은 점점 더 올라가는 추세고, 주변 상황을 봐도 키덜트 시장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예요. 먼 미래까지는 몰라도 한참 동안은 인기가 계속될 것 같아요.
<한솔>
제 주변을 보면, 장난감을 사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아요. 또 요즘 매체에 자주 소개되다 보니깐, 저도 키덜트 문화가 점점 더 발전되리라 생각됩니다.
<원희>
요즘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이런 데에서 캐릭터 산업을 밀고 있잖아요. 실제로 캐릭터상품도 잘 팔리고 있고요. 이런 걸로 봤을 때 키덜트산업의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한솔>
진짜 그러네요. 제 생각에는 한 10년 정도 지나면, 어른도 장난감을 좋아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돼서, 키덜트란 단어 자체가 없어질 것도 같아요. 사실 어른들 대부분이 수집하는 거 좋아하잖아요. 모자, 구두나 운동화, 음반, 주류, 골프채 등 수집하는 물품의 종류가 다양하죠. 그런데 장난감을 모으는 걸 따로 키덜트란 단어로 분류하는 자체가 웃긴 것 같아요.
Q. 키덜트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원희>
저희 가게로 오세요(웃음)! 그냥 키덜트라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사고 싶은 거 사고 하고 싶은 거 하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 괜히 키덜트에 대해 복잡한 생각 같은 건 안 하셨으면 해요.
<한솔>
키덜트인 사람을 오타쿠라고 부르기도 하잖아요. 근데 오타쿠란 말은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되게 부정적으로 쓰이죠. 그래서 숨기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자기가 오타쿠라는 걸 일부러 더 과장되게 드러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둘 다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냥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겠어요. 그러니깐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를 남들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편하게 즐기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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