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진정과 확산의 갈림길에 들어선 가운데 세계 각국이 한국 여행 경보를 발령하는 등 한층 강화된 차단 조치를 강구하고 나섰다.
가장 적극적인 대응조치를 내놓고 있는 홍콩은 한국 여행 경보를 발령하고 한국행 단체여행을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정무사장은 9일 “보안국이 한국에 대해 홍색(紅色)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세 단계 경보 중 홍색은 두 번째 수준으로 불필요한 여행을 자제하고 기존 여행 계획을 조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홍콩이 보건 문제로 홍색 경보를 발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여행업협회인 여유업의회(旅遊業議會)는 홍색 여행경보 발령을 계기로 이달 내 한국 단체여행을 모두 취소한다고 밝혔다. 홍콩 교육국은 각 학교에 한국 여행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것을 고려하라고 당부했다.
일본 정부도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9일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서울의 주한 일본대사관과 부산의 총영사관에 ‘메르스 현지 대책본부’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9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 장관 기자회견에서 나온 일본 기자들의 질문 12개 중 절반인 6개가 메르스 관련일 정도로 한국의 메르스사태는 일본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스가 장관은 이날 “한국 정부에 격리 대상자에 관한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5일 발표한 여행 안전 공지에서 한국 여행 경보를 3단계 경보 등급 중 가장 낮은 ‘주의’ 단계로 분류하며 손 씻기 등 통상적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했다. 한국 여행 계획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 내용이었지만 외국여행 시의 건강 관련 사항을 공개하면서 ‘new’(새 소식)으로 ‘한국’을 언급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와 함께 CDC는 미국 의사들에게 한국에서 메르스가 발병하기 14일 이내 기간에 한국의 병원에 있었던 사람들 중 심한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감염 가능성을 통보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과 유럽 언론들의 관심도 뜨겁다. 9일 CNN 인터넷판은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한국 메르스 사태를 머리기사로 올리며 의학 전문기자를 동원해 메르스에 대해 알아야 정보를 문답풀이식으로 제공했다.
파스퇴르 연구소 국립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표준연구소 부소장 뱅상 에누 박사는 신문에서“메르스 바이러스가 가진 문제는 5일~14일이나 되는 긴 잠복기”라며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비행기를 탔다가 나중에 증상이 나타날 수가 있기 때문에 프랑스도 한국에서 오는 여행객들에 대한 주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 뒤뷔송 감염면역센터 연구소장도 인터뷰에서 “한국의 메르스 전염이 아주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바이러스가 변이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며 아시아인들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유전적으로 약할 수도 있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초동대처에 미숙했던 것과 병원 공개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하지 못한 것 등 두 가지 측면에서 실기했지만 현재 관리는 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츠야마 슈토쿠(松山州德) 국립감염증연구소 실장은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감염이 한정적이고, 감염 경로도 대부분 파악돼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유럽 언론들은 또 ‘최고 수준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국민들이 대부분 마스크를 필수품으로 여길 만큼 전염병 예방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한국에서 지난 3년간 걸프 지역에서만 발병했던 전염병이 어느 나라에서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의문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한국의 병원문화를 원인으로 짚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메르스 바이러스의 경로’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의 대형병원 시스템이 메르스 확산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선 병원이 클수록 최고 의사를 유치한다고 믿어 대형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인맥을 총동원하고, 닥지닥지 붙어 앉아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탓에 다른 환자로 인해 감염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또 가족과 간병인이 환자들과 뒤섞여 병실에 머물면서 환자의 땀을 닦고 환자용 소변기를 치우고 시트까지 갈아내는 각종 수발을 들고 있는데 이처럼 감염위험에 노출시키는 의료문화가 이번 사태를 키운 것 아니냐고 했다.
특파원 종합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