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잡을 수 있다/의료현장 사투] “사망자 나온 병원 근무한대” “네 아빠는 메르스 덩어리”
“그 의사,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온 지역에서 내과 진료를 한대” “사망 환자가 나온 병원에서 근무한대”라는 수군거림은 의사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의사들이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이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근거 없는 각종 루머로 메르스 환자를 치료할 가능성이 있는 의사들을 왕따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따로 있다. 가족들을 향한 ‘마녀 사냥’식 소문이다.
의사 가족들은 힘겨워했다. 메르스 관련 첫 사망자가 나온 병원이 있는 경기 화성시 동탄에서 아버지가 내과 병원을 운영하는 김모 씨(25·여)는 “아버지가 의사인 것이 지금처럼 싫을 때가 없었다”며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병 퍼뜨리는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말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김 씨의 학생 수도 급격히 줄었다. 김 씨는 “3일부터 메르스 때문에 레슨을 미루는 학생들이 생겼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동탄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아는 학부모의 아이들이었다”며 “당분간 아버지가 진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이가 어린 의사 자녀들의 상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서울 강남구에서 이비인후과 병원을 운영하는 남편을 둔 이모 씨(49)는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아들(10)의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울었다. 아들의 반 친구들이 “너희 아빠가 메르스 덩어리니까 너도 메르스 걸렸겠네”라며 기침하는 시늉을 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아들이 ‘선생님이 그런 아이들을 말리면서도 자신에게만 수업 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게 했다’며 서러운 듯 우는데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35번 환자 사례처럼 의사가 환자가 되는 경우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유독 자주 발생하면서 의사는 치유자이고 안전하다는 기대와 사회적 고정관념이 깨지며 실망으로 바뀌었다”면서 “실망의 크기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의사가 병을 퍼뜨린다는 비이성적 수준의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천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