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잡을 수 있다/전문가 조언]
■ 2003년 사스 검역 최전선… 이종구 서울대 글로벌의학센터 소장
사스보다 잠복기 길어 초기진압 애로… 지역사회 대규모 전파 가능성은 낮아
이종구 서울대 글로벌의학센터 소장
이종구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소장은 “한국에 퍼진 ‘메르스 공포’를 자제하는 것이 확산 방지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아시아를 강타했을 당시 인천검역관리소장으로 근무하면서 검역을 총괄했던 사스 전문가다.
이 소장은 “사스에 비해 메르스는 잠복기가 길어 초기 진압이 어려우므로 많은 감염자가 나타날 수 있다”며 “하지만 그 수만 보고 사스보다 위험한 병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중동에서 보고된 사망자는 대부분 신장 관련 기저질환자였다. 이런 기저질환이 없다면 메르스에 걸리더라도 치료로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에 위험한 질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장은 “과도한 공포로 인해 환자들이 주치의를 믿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며 “이것이 타 병원의 3차 감염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소위 ‘닥터쇼핑’(마음에 드는 의사를 찾아 병원을 전전하는 행동)이 전파 범위를 넓혔다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메르스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과 관련해 자제를 권고했다. 그는 “메르스는 인플루엔자처럼 대규모로 번질 가능성이 적다”면서 “지역사회로 전파될 가능성이 낮은 데다 만일 전파된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이번 사태는 한국사회의 의료쇼핑 문화, 응급실 체계 등의 허점을 표면에 드러나게 했다”며 “과도한 불안을 잠재우고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협력해야 메르스를 진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9일부터 후쿠다 게이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차장과 공동단장을 맡아 역학조사와 감염관리 등 분야별 토론, 병원 방문 등을 통해 한국 메르스 확산에 대한 분석도 진행한다.
▼ 2009년 신종플루 방역 총지휘… 전병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
새로운 슈퍼전파자 차단 급선무… 가족간병 등 병원문화 개선할때
전병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2011년 6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 교수는 2009년 신종플루가 대거 확산되던 시기에는 전염병대응센터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는 전염병 전문가다.
그는 지금은 일반 국민의 위기의식과 보건당국에 대한 협조가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자가 격리 대상자가 28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많아진 상황에서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는 감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자가 격리 대상자들이 이탈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감염사태가 발생하면 곧바로 지역사회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병원 내 감염보다 환자 파악과 치료가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 고유의 병원 문화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장 개선이 시급한 문제로는 ‘병원 옮겨 다니기’와 ‘잦은 병문안’을 꼽았다. 메르스 환자 중 다수가 짧은 기간에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감염자를 대거 양산했다는 것이다. 또 병원을 방문했다가 감염된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고, 가족이 사실상 전적으로 간병하는 한국 특유의 병원 문화만 없었어도 환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며 “메르스 확산 사태를 국내 병원 문화 전반에 대해 다시 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방역 전략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긴장감이 너무 떨어졌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염력이 낮다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중동 지역 국가들을 통해 알려진 정보만을 지나치게 맹신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신종플루의 경우 확산될 당시 백신이나 치료제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대응 전략을 짰다”며 “초기에 좀더 강한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메르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것을 감안해 지금부터라도 보건당국이 적극적으로 자세한 치료와 예방 방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 감염병 분야 전문가… 오명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
개인위생수칙 잘 지키면 문제없어… 병원간 전파 막는데 총력 기울여야
오명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해외 학회에 참석 중인 오명돈 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메르스에 대한 지나친 걱정보다는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오 교수는 대한감염학회 이사장과 대한내과학회 학술이사 등을 역임한 국내 감염내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오 교수는 우리보다 먼저 메르스 감염 사태를 겪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를 들며 “지역사회 감염의 우려는 낮다”고 말했다. 2012년 처음 메르스가 발병하자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당국은 전 세계로의 확산을 우려했다. 매년 각국에서 수백만 명의 성지 순례객이 메카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지만 2013, 2014년 성지 순례가 있었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도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는 (전염성이 낮다는) 메르스에 대한 이론이 검증됐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메르스에 대해 지나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지만 확산 고리를 끊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현재처럼 메르스 환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며 병을 퍼뜨리는 악순환을 막지 못하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마비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대표적 상급종합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에 뚫린 상황을 보면 다른 곳에서도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감염내과 분야의 국제적인 권위자”라며 “송 원장이 지휘하는 병원이 메르스 전염을 막지 못했다면 사실상 감염관리 능력이 미약한 중소병원은 메르스 확산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향후 메르스 국가 방역의 초점에 대해 “병원 내 확산을 막는 것과 병원에서 병원으로의 전파를 방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병원으로의 전파 방지를 위한 행동요령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행동요령으로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은 사실을 의사에게 반드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격리 지시를 준수하고, 호흡기 증세가 있을 경우 다른 사람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