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訪美 연기] 靑내부도 놀란 朴대통령 파격 결정
朴대통령 ‘메르스 진압 다걸기’?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대응을 위해 14∼19일로 예정된 방미 일정을 전격 연기했다. 박 대통령이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메르스대책지원본부 상황실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관계자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미국 방문 연기를 결정하자 이같이 말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촉발된 정부 불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방미 연기의 결정적 이유라는 방증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정부 불신→국민 불안→내수경기 침체로 이어진 만큼 이번에는 메르스 사태를 차단해 국정동력을 상실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 청와대 내부에서도 “의외의 결정”
방미 연기 결정은 이날 오전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내렸다고 한다. 곧바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에게 연락해 국내 상황을 설명하며 미국의 동의를 구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방미 일정을 일부 줄이더라도 한미 정상회담은 강행할 줄 알았다”며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박 대통령은 줄곧 한미동맹을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의 축으로 강조해온 데다 웬만해선 여론에 떠밀리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
또 박 대통령이 국정 목표로 내세운 ‘국민 안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점도 방미 연기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에 실패해 정부 불신을 키운 만큼 방미 연기라는 ‘강수’를 통해 현 정부가 ‘국민 안전’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도 반면교사가 됐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곧바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했다. 이를 두고 ‘도피성 방문’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올 4월 세월호 1주년 당일 남미 순방 출국에 나선 것도 뒷말이 많았다.
역대 정부에서도 순방 연기는 있었다. 1990년 5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4개국 순방 계획을 세웠지만 노사 분규가 확산돼 연기를 택했다. 1997년 3월 김영삼 대통령도 ‘한보 사태’가 터져 유럽 4개국 순방을 연기했다. 2001년 9월에는 미국 9·11테러 여파로 김대중 대통령이 유엔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방미 연기로 메르스 사태 수습에 대한 강한 의지는 보여줬지만 청와대는 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방미를 포기한 대신에 국내에서 어떤 행보를 통해 정부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잘 수습하지 못하면 ‘미국에 가든, 안 가든 다를 게 없었다’는 비판의 빌미만 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는 국내 정치적으로 메르스 사태로 묻힌 국회법 개정안 논란에 다시 불을 댕겨 새로운 갈등을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시한 국회법 개정안의 정부 이송 시한은 11일이다. 앞서 정 의장은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한 국회의 강제력을 완화한 중재안을 제시했다. 만약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원안대로 법안이 이송되면 박 대통령은 다음 주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을 ‘냉각기’로 삼아 행정부와 입법부 간 정면충돌을 피하려 한 정 의장의 구상도 엉클어진 셈이다.
정 의장은 10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11일 새누리당 유승민,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를 각각 만나 양당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겠다”며 “야당이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11일 이송하겠지만 추후 합의 여지가 남아있다면 이송을 더 늦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수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중재안에 부정적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정 의장이 메르스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법안 이송을 늦추면서 여야 협상을 독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egija@donga.com·길진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