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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백제가 日에 전한 칠지도엔 형제국의 숨결이…

입력 | 2015-06-15 03:00:00

[수교 50년, 교류 2000년 한일, 새로운 이웃을 향해]시리즈를 시작하며




칠지도 보러 온 日관람객들 2월 일본 후쿠오카 규슈국립박물관이 개관 10주년 특별전으로 연 ‘고대 일본과 백제의 교류’전에 모인 일본인들. 중년의 관람객들이 백제와 왜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인 칠지도 앞에 서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일본 국보 중 국보로 평가받는 칠지도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신궁에서 빌려왔다고 박물관 측은 전했다. 후쿠오카=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 올 2월 23일 일본 후쿠오카(福岡) 다자이후(太宰府)에 있는 국립규슈박물관 1층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조용히 줄을 지어 관람하던 일본인들은 유물 앞에 서서 한동안 뚫어지게 보거나 뭔가를 열심히 적는 등 매우 진지한 모습이었다.
관람객들은 대부분 50대 이상 중년들이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은퇴했다는 기시모토 씨(65)는 “도쿄에서 5시간 신칸센 기차를 타고 왔다. 평소 일본 고대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신문에 난 전시 소식을 듣고 짬을 내 왔다”고 했다.

올해로 개관 10년째를 맞는 규슈박물관은 후쿠오카 시에서도 차로 30여 분 가야 닿는 비교적 외곽에 있지만 규모와 건물 디자인 면에서 동서양의 미학을 제대로 살린 건축물이라는 평을 듣는 곳이다. 연 평균 관람객이 10여만 명에 달할 정도로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공간이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전시가 2개월(2~3월) 동안 무려 5만 명을 불러 모을 정도로 각별한 주목을 받았던 것은 ‘고대 일본과 백제의 교류’라는 제목을 내건 특별전 때문이었다.

일본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에 가보면 문화 전파를 언급할 때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되어 있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아예 ‘백제’를 내걸고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반가사유상을 내걸고 ‘고대 일본과 백제의 교류’를 소개한 전시장 입구.

실제로 둘러본 전시장 곳곳에 걸린 시대별 유물을 설명하는 글들에서는 백제인에 대한 존경과 헌사의 내용들로 가득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백제가 왜(倭)와 연합군이 되어 신라와 중국에 맞서 전쟁을 치른 ‘백천강’ 전투를 조명하면서 두 나라가 혈맹(血盟)이었음을 강조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은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신라와 중국 당나라(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660년 백제가 패하자 백제 유민들은 너도나도 규슈로 왔고 3년 뒤 유민들을 중심으로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자 왜와 손을 잡았다. 663년 백제와 왜 연합군은 백제왕조 복원을 위해 백천강(지금의 금강 하구) 전투에서 나당연합군과 싸우지만 대패한다.’

‘백천강 전투’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한일 고대 사학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사건이다. 한반도에 고대 국가가 만들어진 330년부터 백제·고구려가 잇따라 망하는 660년대까지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는 적으로 싸웠지만 왜에게는 문명을 전해주고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백천강 전투 때 왜군들은 무려 3만여 명의 군사를 파견했다가 대부분 희생됐다.

전시를 기획한 구스이 다카시 전시과장은 “전투 후 신라와 중국이 쳐들어올 것을 우려한 일본인들은 백제의 병법과 건축 기술을 활용해 미즈키(水城), 오노조(大野城), 기이조(基肄城) 세 성을 쌓았는데 ‘일본서기’는 이 건축물들에 ‘백제에서 망명한 관료들이 관련돼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며 “백제인들은 고대 일본이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깊게 관여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전시에는 백제와 고대 일본의 문화 교류를 상징하는 토기, 장식품, 기와, 불상 등이 공개됐는데 이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이 백제 칼 ‘칠지도(七支刀)’였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칠지도’는 고대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奈良) 현 덴리(天理) 시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 보관된 것으로 일본인들에게조차 잘 공개되지 않는 국보 중의 국보로 통한다. 비록 일주일 한정이긴 했지만 이번 전시에서 진품이 공개되자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한국인들까지 관람을 했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

전시를 보고 나오며 기자는 박물관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금으로부터 1350년 전 이곳 규슈로 이주한 백제인들을 떠올리며 전시를 기획했다”고 했던 말이 귀에 생생했다.

작금의 한일 관계는 매우 답답한 형국이다. 뭔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이에 본 시리즈는 다음 두 가지 시각으로 기획되었다.

첫째, 위안부문제 독도문제 등 현안도 중요하지만 동아시아 문명사의 전래와 확장이라는 역사적 시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문명사는 북에서 남으로, 바이칼 황하 등 물에서 육지로, 기마민족에서 농경민족으로 확산되어 왔다. 우리 선조들이 수렵과 어업이 주축이던 일본에 벼농사와 문명을 전파하고 진출한 것은 어쩌면 역사의 필연에 가까운 것이었다.

둘째, 지금 이 시점에서 한일 관계는 양국의 평화와 더불어 지구촌 공영에 공동 기여 한다는 미래지향적 시각이 중요하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잘 가르쳐 미래의 주역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한일 두 나라 관계가 단순한 일방적 교류나 식민 피지배 시기로만 한정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오랜 시공간적 시간으로 보면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동질적인 문명적 복합체 성격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본다. 차제에 한일 젊은이들이 미래에 함께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한일 간의 2000년 교류 역사 속에서 재발견해야 하는 이유이다.

2001년 日王 “일본인에게 백제인의 피가 흐른다” 한일 월드컵을 한 해 앞둔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이 68세 생일을 맞아 왕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속일본기에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왕의 자손이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한 것을 제목으로 뽑은 석간 아사히신문 23일자 1면. 출처 아사히신문PDF

한편 이 대목에서 일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피 속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한국과 일본인들이 서로를 더 잘아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아키히토 일왕이었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1년 앞둔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을 맞아 왕실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천황(일본 고대문화 전성기 헤이안 시대를 연 왕)의 생모(生母)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어 “두 나라는 한층 더 서로의 과거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노력하고, 개개인으로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왕의 이 말은 같은 날 아사히신문 석간 1면과 4면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15년 한일 수교 5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를 맞았지만 한일관계는 그때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이다.

옛 조상들의 흔적을 살피며 과거 고대로부터 이어진 두 나라의 인연을 되살려 새로운 이웃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제 우리 두 나라 후손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 칠지도 ::

쇠로 된 긴 몸체에 좌우 여섯 가지가 엇갈려 배열돼 몸체와 함께 모두 7개의 가지를 가진 칼(刀)이라는 뜻. 몸체에 백제왕이 왜왕에게 전한 외교 문서가 담겨 있다.

후쿠오카=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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