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사회부 기자
과거 정부의 대응이 궁금해 얼마 전 국민안전처 관련 부서에 사스와 신종 플루 때 만든 정부의 ‘백서(白書)’에 대해 물었다. 해당 간부는 “사스 때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되지 않아 백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대본이 가동됐던 신종 플루 때는 백서가 만들어졌는데, 한 권 갖고 있던 백서를 며칠 전 국장이 가져갔고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안전처 간부들이 ‘돌려 보는’ 신종 플루 백서는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쉽게 다운로드도 가능했다. 그렇게 손에 쥔 백서를 읽어 가다 보니 실망감이 앞섰다. 무려 726쪽에 이르는 백서의 63%(462쪽)가 각종 운영지침, 공문, 보도자료, 언론보도 등을 묶은 ‘참고자료’였기 때문이다.
‘전염병 백서’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미래 정부’에 대한 조언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신종 플루 백서는 단 6쪽 분량의 ‘향후 과제’에 이를 담았다. 비록 페이지 수는 적었지만 핵심을 찌르는 지적은 여럿 보였다.
‘환자와 접촉한 사람의 추적관리 시스템 및 전염병 조기탐지시스템 마련’ ‘전염병 위기단계 발령 관련 객관적 기준이 미비한 상황’ ‘병원 간 역할 분담이 원활해야 한다’ ‘신종 플루 의심 사례자를 격리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 등의 지적이다. 최근 메르스와 관련해 정부 대응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들이다. 6년 전 정부가 ‘자인’한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반드시 ‘메르스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백서의 내용은 세밀하고 정확해야 한다. 메르스 확산 시기에 따른 정부 대응의 잘잘못을 시시콜콜하게 담아야 한다. 그렇게 완성된 백서는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무서운 신종 전염병을 막는 ‘강력한 항생제’가 될 것이다.
도서관에서나 참고용으로 보는 백서가 아니라 현장대응에 정말 도움이 될 백서가 되려면 상황이 종료됐을 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백서를 준비해야 한다. 현재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피해 상황 변화, 그에 따른 정부의 실시간 판단의 생생함과 정확성이 몇 주, 몇 달 뒤에는 무뎌지기 때문이다. 메르스 확산을 막는 것 못지않게 그 과정을 철저히 기록하고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