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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늦어도 괜찮아, 호흡만 맞는다면

입력 | 2015-06-16 03:00:00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나에게는 동료가 한 명 있다. 딱 한 명이다. 개인적인 일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함께 한다. 그녀와 나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잡지를 만든다. 그러니까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함께 한다. 기획하고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편집을 하고 인쇄소에 맡기고 감리를 보고 검수를 하고 서점에 입고하는 일까지. 이 과정들 사이사이에는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가끔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서로를 격려한다. 우리는 잘할 수 있다고.

지금의 출판사를 만들기 전, 나는 일 년 남짓 회사 생활을 했다. 회사 생활이라고 하기에 민망하지만 말이다. 잡지사 기자의 어시스턴트로 근무했기 때문에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해진 날짜에만 업무를 보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일할 때 내 마음은 공중을 나는 새처럼 붕붕 떠 있었다. 그 마음의 갈피가 무엇인지 몰라 힘든 날도 많았다.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사원증을 목에 걸지 못해 그런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 마음의 틈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큰 실수를 하고 회사를 떠나듯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의 동료를 만나 작은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든든한 동료가 생긴 지금에서야 그 시절의 마음을 꺼내 볼 수 있었다. 막 사회에 반걸음을 디딘 초년생이었고 모든 것이 긴장 상태였다. 툭 치면 팡 하고 터질 것처럼. 동료를 만들 수 있는 어떤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동료의 부재. 그것이 나를 가장 외롭게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어른들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주워들었던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들을 동경했다.

내가 속한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동료가 무엇이기에. 어떤 단어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사전이다. 사전적 의미를 짚어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단어에서 풍기는 분위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종이 한가운데 덩그러니 써놓고 읽기만 해도 배부른 단어다. 배부름을 느낄 수 있는 동료를 만나는 것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벅차다. 죽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뿐더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양쪽 페달을 돌리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먼저 중심을 잡고 재빠르게 페달에 발을 올리면 앞으로 나아가기는 쉽다. 그런데 나는 중심을 잡아도 양쪽 페달의 호흡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료를 만나기는 쉽다. 하지만 함께 호흡하는 그 리듬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나만의 동료를 찾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깨달았다. 일 년 남짓한 회사 생활에서 동료를 만날 수 없었던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호흡을 맞출 새도 없이 오직 달렸고 상대에게 맞출 수 있는 시간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잘 달리면 모를까 서툴렀으니 자주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그 누구도 나를 잘 돌아가는 페달 같은 동료로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대부분의 이유는 지나고 나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까.

지금 나에게는 동료가 한 명 있다. 어두운 동굴 같은 현실 속을 함께 걷는 동료가 있다. 이 호흡을 찾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부딪쳤다. 그 시간 동안 아프게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동료에 대한 강한 신뢰 덕분이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들어선 우리의 호흡을 지켜보면서 너무 늦지 않게 좋은 동료를 만난 것에 감사한다.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셋보다는 넷. 그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길 바란다. 천천히 늘어도 괜찮다고 되뇐다. 그 전에 나도 그녀에게 잘 돌아가는 페달 같은 동료인지 다시 물어봐야겠다.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