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꿩 한 마리가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보호색에만 의지한 채 무방비 상태로 알을 품고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이렇게 필자와 꿩의 인연은 시작됐다. 꿩이 노니는 땅을 인생 2막의 터로 선택했다는 것은 행운이다. 풍수에서 꿩은 본능적으로 명당을 찾아내는 새로 불린다. ‘명당 새’에 대한 필자의 높은 관심과 배려는 자연스레 둘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으로 이어졌다.
물론 위험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따금 들고양이와 매의 습격을 받을 때, 기겁한 꿩들은 “꿕꿕” 큰 비명을 내지르며 푸드덕 날아 도망친다. 하지만 평소에는 수려한 외모의 수컷(장끼)이 몇 마리의 암컷(까투리)을 거느리고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곤 한다.
한동안 꿩들이 사라진 집과 밭 주변은 뭔가 허전하고 스산함마저 느껴졌다. 산비둘기가 대신 무리를 지어 살았지만, 이전에 꿩과 나누던 일종의 교감은 이뤄지지 않았다.
꿩은 연중 우리 곁에 머물러 사는 텃새 중 하나다. 그래서 예로부터 설화 소설 판소리 등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꿩 서방’ ‘서울까투리’ 등은 꿩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좀 엉성하고 모자란 듯한 사람에게 갖다 붙이는 '꺼벙이'란 별명도 실상은 꿩의 새끼를 일컫는 '꺼병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각종 설화에 등장하는 꿩은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아는 보은의 새로 그려졌다.
필자 가족의 기억 속에 조금씩 잊혀 가던 꿩들이 다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해 12월 겨울이 되어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한층 더해진 듯했다. 그래도 다시 찾아와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공존하는 관계까지 다시 복원이 됐다. 특히 최근의 한 ‘사건’은 이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필자의 놀란 움직임과 시선에도 암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그 눈과 표정에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처음엔 뱀에 물린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새끼들을 부화시키기 위해 알을 품고 있었다.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의 목숨은 돌보지 않는 꿩의 지극한 모성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다음 날 둘째딸(19)과 함께 생사를 초월한 꿩의 모성애를 재확인했다. 아마도 둘째딸은 호기심 이상의 큰 교훈을 얻었으리라.
사실 꿩은 무려 20여 일 동안 보호색에만 의존한 채 무방비 상태에서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시킨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그 기간 필자의 예초기가 꿩의 둥지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절체절명의 위기상황도 있었다(다만 필자가 몰랐을 뿐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들고양이와 뱀들의 위협은 또 어떤가.
다행히 닷새가 지나자 어미 꿩은 무사히 새끼들을 부화시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암꿩의 모성애를 지켜본 그 기간, 세상은 메르스와 ‘신생아 시신 택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