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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소설의 성패는 리얼리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나오키상 수상작가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소설 ‘감독’은 그런 점에서 수작이다. 1978년 야쿠르트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명장 히로오카 다쓰로를 다룬 팩션이다. 엔젤스라는 가상의 야구팀이 꼴찌에서 1등이 되기까지, 1년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어떤 팀이 강팀인가’를 설파하고 있다. 팀에 필요한 코치와 선수를 보강하고 팀 분위기를 쇄신해 잘 나가던 엔젤스는 시즌 중반부터 연패에 빠져 순위가 다시 곤두박질친다. 히로오카는 ‘벤치 사인이 간파당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는데, 사인을 훔치는 ‘범인’이 상대팀이 아니라 자기 팀 선수라는 자각이었다. 선수들은 어느 순간부터 감독의 생각을 파악하려고 애쓰며 야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수들의 그런 마음을 안 순간, 히로오카는 선수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안도감과 이제 어느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되찾는다. 다시 치고 올라간 엔젤스는 기어코 정규시즌 우승을 일군다.
#야구팀은 평생 야구만 해온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레너드 코페트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성찰했듯 선수들은 은근히 감독의 ‘야구내공’을 시험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결과가 안 좋으면 ‘우리 감독은 야구를 몰라’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바보로 만드는 것도 선수고, 아무리 평범한 감독이라도 승자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선수’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는 뻔한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선수와 감독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강팀이라는 얘기다. 전력 이상의 결집력으로 버티는 팀이 지금 KIA다.
#2009년 이후 6시즌 중 5번 꼴찌를 했던 한화도 뭉쳐야 할 절실함이 가득한 팀이었다. 야구인생에서 한번은 영광의 순간을 겪고 싶을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을 만나서 이기는 재미를 알아가며 치열한 야구를 감당하고 있을 터다. KIA, 한화와 대비되는 팀이 SK, LG다. SK는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LG는 최근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란 실적을 선수들이 경험했는데, 이것이 ‘감독의 야구’와 ‘선수의 야구’ 사이에 괴리를 만드는 독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준비한 시즌 플랜, 팀 플랜이 깨진 것은 분명 감독의 잘못이다. 그러나 오류는 어느 팀에나 있고, 전략적 오판을 견뎌낼 수 있는 ‘면역력’이 팀의 저력인데, 현재의 SK와 LG에는 무기력증만 감돌 뿐 돌파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승리와 패배를 결정짓는 것은 (이름값이나 과거 전적이 아니라) 지금 어느 팀이 이기려는 의지가 더 강한지에 달렸다.” 히로오카의 말이다. 아직 6월, 포기하기에는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