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파장] 18일 밤12시 격리 해제 순창마을 르포
지원물품 전달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해 5일부터 출입이 통제돼 온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 주민들이 지원 물품을 옮기고 있다. 추가 감염자가 나오지 않으면 이 마을 73가구 주민 102명의 격리는 19일 0시부터 해제된다. 순창=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7일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덕마을 주민 A 씨의 말투에 안도감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장덕마을은 메르스 확진환자(72·사망)가 발생하면서 이달 4일 밤 12시 무렵 마을이 통째로 격리됐다. 마을 안팎을 이어주는 길목 4곳이 모두 통제된 것이다. 메르스 사태 시작 이후 마을 전체가 봉쇄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마침내 14일간의 격리 기간이 18일 밤 12시(19일 0시)에 끝난다. 격리 기간 중 주민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집 안에만 머물렀다. 외부인의 출입도 금지됐다. 오직 방역장비를 갖춘 역학조사관과 방역담당자들만 마을을 오갈 수 있었다. 격리 초기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던 주민들은 막바지에 이르자 다소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주민 B 씨는 “우리 마을이 이렇게 유명해진 건 마을이 생기고 처음일 것”이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을 모습이 언론에 나오고 행정자치부 장관과 야당 대표까지 마을을 찾았다. 국회에선 장덕마을 농산물 팔아주기 행사까지 열렸다.
하지만 난생처음 겪는 통제 생활에 힘든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연중 가장 바쁜 농사철인데도 일을 나서지 못한 채 논밭을 바라보기만 한 것에 가슴 아파했다. 주민 D 씨는 “피땀 흘려 가꾼 농산물을 제때 수확하지 못해 괴로웠다. 농사꾼이 아니면 그 심정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마을 격리 시점은 오디 수확이 막 시작되던 때. 다행히 군청과 경찰서 등의 공무원들이 일손을 돕고 단체 수매도 해줬지만 시기가 늦어 절반 정도만 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격리가 해제된 뒤에도 ‘메르스 마을’이라는 낙인 때문에 일손을 구하거나 농작물을 팔기가 어려울 것 같아 주민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논밭을 일구는 주민뿐 아니라 건축일이나 식당종업원 등 일용직 근로자들의 어려움도 컸다. 긴급 생계비가 지원되고 있지만 평소 수입의 절반 수준에 그쳐 모아놓은 생활비가 바닥날 지경인 사람들이 많다. 거의 날마다 읍내 병원에 다니던 노인들도 의료원에서 배달해준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나마 지역 봉사단체와 전국 각지에서 반찬과 생활용품 구호품 등 격려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주민들은 오히려 메르스에 걸려 12일 숨진 할머니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이웃사촌의 장례식에도 아무도 가지 못했다. 대신 주민들은 숨진 할머니의 누명을 벗겨 달라고 순창군에 건의했다. 숨진 할머니는 지난달 22일 경기 평택성모병원에서 퇴원할 때 당국의 조치를 무시하고 순창에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퇴원 당시 보건당국으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장덕마을 주민에게 소득에 관계없이 가족 수에 따라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했고 순창군도 주민 심리치료와 건강검진 등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주민 E 씨는 “메르스 때문에 난데없이 우리 마을까지 날벼락을 맞았다”며 “어서 논밭에도 나가고 동네 사람들끼리 막걸리도 마시며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