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씨 주장에 창비 통해 입장 표명… 유사 문장 해명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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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나는 모르는 일이오” 표절 의혹에 휩싸인 소설가 신경숙 씨가 17일 “(논란이 된)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 씨가 독자에게 미안하고, 믿어달라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한국 문학 독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동아일보DB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자신의 단편소설 ‘전설’이 일본 작가 작품의 표절이라는 소설가 이응준 씨(45)의 주장이 나온 지 하루 만인 17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입장을 내놓았다.
신 씨는 창비를 통해 발표한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에서 “해당 작품은 알지 못한다”며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씨가 표절 근거로 제시한 두 소설의 흡사한 대목에 대해선 일절 해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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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자 A21면 참조 “신경숙, 日작가 미시마 유키오 작품 표절의혹”
○ 신 씨의 사과에도 문단과 독자들 비판 여론 거세
신 씨의 해명이 나온 후 문단에서는 신 씨에 대한 비판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날 이 씨의 표절 주장이 나왔을 때만 해도 적지 않은 동료 문인들이 “소설 습작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감싸준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신 씨가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작가로 존중하지만 ‘모르는 작품’이라는 해명은 최악의 대답”이라며 “예비 작가 시절 수련할 때 여러 작품을 베껴 써봤을 텐데 모른다는 식의 대답은 자충수”라고 말했다. 소설가 A 씨도 “습작 과정의 실수라고 사과했다면 이해했겠지만 저런 고백은 신 씨가 일본 극우소설가와 문학적 유전자가 같다는 해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 해당 대목 외에도 유사한 부분 나와
창비도 ‘문학출판부의 입장’을 내고 이 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창비는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라며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우국’의 번역자인 김후란 시인은 “(문제가 된 대목이) 미시마 원작의 발상, 표현 방식과 무척 많이 닮아 있다”며 “소설을 보든, 보지 않았든 창작자는 다른 작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보가 직접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주제나 분위기는 달랐지만 흡사한 문장 외에 설정의 유사점도 눈에 띈다. ‘우국’에선 천황을 위한 쿠데타에 참여하지 못한 신혼의 다케야마 중위가 등장한다. ‘전설’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새신랑인 남자가 아내를 두고 전쟁에 참전하는 내용이다. 신혼의 주인공이 거사(쿠데타 또는 전쟁)에 참여하려 하자 친구들이 만류하는 설정도 비슷하다. 다케야마 중위가 “내가 신혼이라고 나만 안 껴준 걸까” 하는 장면과 ‘전설’의 새신랑이 “내가 신혼이라 친구들은 내게 말도 없이 자원했소”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문학평론가 B 씨는 “문학계는 표절에 대한 명백한 규정도, 처벌하는 기구도 없어 표절 논란이 일어나도 그대로 넘어가기 일쑤였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공개된 정보를 독자가 실시간 공유하는 만큼 문학의 권위 회복을 위해서도 문학계 표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