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수술로 세월호 못탔던 단원고 박진수군
진수는 세월호 참사 이틀 전인 지난해 4월 14일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뇌종양이 처음 발견된 건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중학교 1, 2학년을 병원에서 보낸 다음에는 건강해진 줄 알았다. 뇌종양이 재발했다는 통보를 받은 게 수학여행 직전인 3월 말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담임이었던 고 이해봉 교사와 같은 반 친구들은 수술을 기다리던 진수의 병실을 찾았다. “우리끼리만 여행가서 미안해. 잘 다녀올게.”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 있던 진수가 일반 병실로 올라온 날 아침, 전남 진도의 맹골수도는 세월호와 진수의 친구들을 삼켜버렸다.
진수는 사고 직후 두 달 동안 말을 잃었다. 진수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는 6반의 이다운 군이었다. 이 둘과 중학교 동창인 A 군까지 세 명은 늘 붙어 다녔다. 세 명은 서로의 영문 이니셜이 새겨진 우정반지를 나눠 꼈다. 가수가 꿈이었던 이 군이 생전에 작곡한 노래가 세상에 알려진 뒤 유명 가수의 입에서 불리자 이를 듣던 진수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고 후 두 달이 지나 이 노래를 듣고 입을 연 진수가 눈물을 떨구며 꺼낸 첫마디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였다.
하지만 마지막을 직감했던 것일까. 가래가 가득 차 말도 제대로 못했던 진수는 15일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일도 못 하고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엄마 아빠 사랑해.” 진수가 아버지(47)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진수는 주치의와 간호사에게도 “고생하셨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겨워하는 진수에게서 감사 인사를 들은 이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16일 오후 고려대 안산병원에 차려진 진수의 빈소에서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가 만났다. 진수 아버지와 이다운 군의 아버지는 서로 아들의 추억을 떠올렸다. “둘이서 오디션 간다고 새벽 4시에 집 나설 때 아버님이 데려다 주셨다면서요?” “그랬죠. 애들이 가게 전단지를 돌려줘서 고맙다고 짜장면하고 탕수육을 사줬는데 그렇게 맛있게 먹더라고요.” 두 아버지는 이제 혼자 남은 A 군을 걱정했다. 빈소 한쪽에 멍하니 앉은 A 군의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에는 우정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진수는 18일 그토록 가고 싶었던 단원고 2학년 5반 교실을 마지막으로 들른다. 이어 화장절차를 거친 뒤 평택서호추모공원 납골당에서 쉬고 있는 이다운 군 바로 아래에서 영면(永眠)에 들어간다.
안산=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