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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친구들 따라 하늘나라 수학여행

입력 | 2015-06-18 03:00:00

뇌종양 수술로 세월호 못탔던 단원고 박진수군




친구들이 떠난 지 1년 2개월 만이었다. 진수는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산소호흡기를 끼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날짜와 시간을 계속 물었다. “오늘 며칠이야, 지금이 몇 시야? 나 이제 갈 시간이 됐나 봐.” 2, 3분에 한 번씩 가득 찬 가래를 호스로 빼내면서도 진수는 중얼거렸다. 16일 오후 1시 30분경 진수는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 이다운 군과 친구들 곁으로 떠났다. 박진수 군(18·사진)은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친구들을 잃은 안산 단원고 3학년이다.

진수는 세월호 참사 이틀 전인 지난해 4월 14일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뇌종양이 처음 발견된 건 중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중학교 1, 2학년을 병원에서 보낸 다음에는 건강해진 줄 알았다. 뇌종양이 재발했다는 통보를 받은 게 수학여행 직전인 3월 말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담임이었던 고 이해봉 교사와 같은 반 친구들은 수술을 기다리던 진수의 병실을 찾았다. “우리끼리만 여행가서 미안해. 잘 다녀올게.”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 있던 진수가 일반 병실로 올라온 날 아침, 전남 진도의 맹골수도는 세월호와 진수의 친구들을 삼켜버렸다.

진수는 사고 직후 두 달 동안 말을 잃었다. 진수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는 6반의 이다운 군이었다. 이 둘과 중학교 동창인 A 군까지 세 명은 늘 붙어 다녔다. 세 명은 서로의 영문 이니셜이 새겨진 우정반지를 나눠 꼈다. 가수가 꿈이었던 이 군이 생전에 작곡한 노래가 세상에 알려진 뒤 유명 가수의 입에서 불리자 이를 듣던 진수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고 후 두 달이 지나 이 노래를 듣고 입을 연 진수가 눈물을 떨구며 꺼낸 첫마디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였다.

수술을 마친 진수에게는 항암치료가 남아있었다. 10번의 항암치료를 거치면서 75kg이었던 건강한 몸은 38kg으로 쪼그라들었다. 말라버린 몸에선 바늘 꽂을 혈관 찾기도 힘들었다. 손목과 팔은 물론 발까지 찔러보느라 주사 놓을 때마다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차라리 내가 세월호에 탔더라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밀려오는 고통에 힘겨워하며 진수가 했던 말이다. 그 와중에도 진수는 인터넷으로 학교 수업을 들으며 수업일수를 채웠고 컴퓨터공학도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을 직감했던 것일까. 가래가 가득 차 말도 제대로 못했던 진수는 15일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일도 못 하고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고. 엄마 아빠 사랑해.” 진수가 아버지(47)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진수는 주치의와 간호사에게도 “고생하셨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제대로 발음하기도 힘겨워하는 진수에게서 감사 인사를 들은 이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16일 오후 고려대 안산병원에 차려진 진수의 빈소에서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가 만났다. 진수 아버지와 이다운 군의 아버지는 서로 아들의 추억을 떠올렸다. “둘이서 오디션 간다고 새벽 4시에 집 나설 때 아버님이 데려다 주셨다면서요?” “그랬죠. 애들이 가게 전단지를 돌려줘서 고맙다고 짜장면하고 탕수육을 사줬는데 그렇게 맛있게 먹더라고요.” 두 아버지는 이제 혼자 남은 A 군을 걱정했다. 빈소 한쪽에 멍하니 앉은 A 군의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에는 우정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진수는 18일 그토록 가고 싶었던 단원고 2학년 5반 교실을 마지막으로 들른다. 이어 화장절차를 거친 뒤 평택서호추모공원 납골당에서 쉬고 있는 이다운 군 바로 아래에서 영면(永眠)에 들어간다.

안산=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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