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일본인에게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던 시절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일본인 허모 씨(72)에게 한국 정부가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일본에서 태어난 허 씨는 1973년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가 2년 뒤 학교 기숙사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영장 없이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했다. 당시 중정은 허 씨가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게 지원을 받는 한국민족자주통일동맹에 가입해 국가 기밀을 수집·누설했다는 혐의를 씌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 결국 허 씨는 1,2심에서 징역 3년6월, 자격정지 3년6월에 처해져 옥살이를 했지만 대법원에서 자백 외의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뒤집어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허 씨는 2006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2010년 7월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당시 국가가 허 씨에게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했다”고 결정하자 허 씨는 일본인으로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허 씨가 한국 국민이었을 때 국가로부터 피해를 봤다며 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국가가 허 씨에게 위자료 3000만 원을, 2심은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