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영성의 뿌리를 찾아서]<하>첫 여성 교회학자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1567년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 창립… 절제-고행-금욕의 덕목 실천 남성 중심 교회서 활발한 쇄신 활동… 현대 가톨릭 개혁정신과 통해
데레사 수녀를 그린 그림. 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아무도 몰랐다. 그 아이가 나중 ‘아빌라의 성녀’ ‘예수의 데레사’라는 위대한 수식어의 주인공이 될 줄은. 그는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출생해 24세에 생을 마감한 ‘소화(小花) 데레사’와 구분하기 위해 또는 ‘대(大) 데레사’로 불리기도 한다.
성녀 데레사(1515∼1582)는 가톨릭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인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 중심의 가톨릭 시스템에서 여성이 가톨릭 쇄신의 주역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500년 전이라는 시간의 무게까지 더하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서쪽 아빌라에 있는 엔카르나시온 가르멜 수도원과 순례자용 지팡이를 든 성녀 데레사의 동상. 이곳 수도원장을 지낸 데레사 수녀는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했고,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가톨릭 쇄신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천주교주교회의 제공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엔카르나시온 가르멜 수도원은 데레사 수녀가 추구한 삶과 영성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입구부터 봉쇄 수도원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가왔다. 좁은 문을 들어서면 스스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안의 끈을 당기면 외부에서 출입문을 열어 주도록 돼 있다. 작은 면회실은 창살이 있어 감옥의 면회실을 연상시켰다.
이곳에는 데레사 수녀의 활동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와 함께 소박한 주방, 수녀들이 연주한 악기 등이 전시돼 있다. 한쪽에는 데레사 수녀가 52세 때 고해신부로 인연을 맺은 25세의 성 십자가의 요한과 관련된 유물도 남아 있다. 데레사 수녀의 영성에 영향을 받은 십자가의 요한은 남자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연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데레사 수녀와 아기 예수의 만남을 묘사한 공간이다. 데레사 수녀는 이때 “나는 데레사의 예수다”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의 데레사’라는 별칭이 붙게 된 신비 체험의 순간이다.
1582년 데레사 수녀는 다른 지역에서 수도원을 만든 뒤 아빌라로 돌아가던 중 서쪽의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묵다 “주여, 나는 성 교회의 딸”이라고 거듭 말하며 숨을 거뒀다. 그곳 수녀원에는 데레사 수녀의 유해가 있다. 이곳에는 수백 년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심장과 한쪽 팔이 보존돼 있어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주교주교회의 이정주 신부는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 가톨릭교회의 기본 정신 중 하나”라며 “특히 가난과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한 데레사 성녀의 개혁 정신은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빌라(스페인)=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