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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쟁론]초등교과서 漢字 병기 부활

입력 | 2015-06-19 03:00:00


  《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교과서에 한자를 한글과 병기할 계획을 밝힌 후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자는 1970년 한글전용화정책이 시행되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사라졌습니다. 교육부 정책이 시행되면 한자가 48년 만에 ‘부활’하는 것이죠. 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한자를 알아야 동음이의어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어휘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글학계와 관련 단체들의 반대도 만만찮습니다. 이들은 “한글만으로도 우리말과 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한자를 병기하면 관련 사교육이 증가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4월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철회’를 교육부에 건의하기도 했지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를 둘러싼 양측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 (사)전국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 이사장

[贊]한자 소홀히 해 文解力OECD 꼴찌



교육부에서 2018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漢字)를 병기하기로 결정한 것은 갑자기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이 결코 아니다. 반세기 이상 한글 전용을 지향해온 결과 많은 문제점을 초래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결정한, 청사에 길이 빛날 문자정책이다.

그동안 한글 전용 정책이 야기한 문제점을 대략만 추려 봐도 7가지에 이른다. 먼저 국어어휘 70% 이상이 표의성 한자어다. 그러나 그 발음만을 표기하는 언어생활을 이어온 결과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중 문해력(文解力)이 최하위로 떨어지게 됐다. 또 전국 대학의 장서(藏書) 90% 이상이 국한문 혼용으로 돼 있는데, 대학생들이 읽지 못해 도서관 책들이 거의 사장(死藏)돼 있다.

우리나라는 한자를 엄연히 국자(國字)로 이용해 수천 년 동안 일상 문화생활을 이어왔다. 그런데도 일부 한글 전용자의 주장으로 상당수 국민이 한자는 중국 문자를 빌려다 쓰는 것으로 여기게 돼 무조건 배척하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성씨가 100% 한자로 호적에 등재돼 있는데 한자를 남의 나라 문자로 여김으로써 전 국민이 자신의 성씨도 제 나라 말로 갖고 있지 못한 수치스러운 민족이라는 모순에 빠지게 됐다. 국회의원들이 의사당 내 명패의 한자 성명이 우리말이 아니라고 해 최근 한글로 바꾸었는데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부모가 외국어로 성명을 지어줬다는 말인가?

북한도 최근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한자 교육을 국어 교육으로 더욱 강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초등학교에서는 한자 교육을 하지 않았다. 중고교에 한문 과목이 있지만 선택과목인 제2외국어로 정해 놓았고 한문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어 남북한 언어의 괴리(乖離)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나아가 동북아 한자문화권이 날로 부상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자 교육을 소홀히 해 스스로 한자문화권에서 고립돼 국제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 근래 한국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80% 이상이 중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인데, 한국 거리의 간판 안내판 도로표지판 대부분이 한글로 돼 있어 아주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정부는 관광산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부 시책으로 조속히 강구(講究)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역대 교육부 장관 13명, 역대 국무총리 전원 23명, 서울시 구청장 전원 25명, 여야 국회의원 90%, 학부모 89.1%, 교사 77.4% 등이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현 정부에서 건의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측이 여기저기 반대 글을 실어 국민을 호도(糊塗)하는 것은 전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국(害國) 행위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들의 주장 가운데 ‘중학교부터 한문 수업을 통해 한자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보면 마치 중고교에서 한문을 필수과목으로 교육하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한문은 분명히 제2외국어로서 선택과목임을 알아야 한다.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결혼해서 자녀를 한글만 가르치는 초등학교와 한자도 가르치는 초등학교 중 어디에 입학시킬 것인가를 설문조사한 결과 100%가 한자도 가르치는 학교에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이 하나의 결과만으로도 초등학교 한자 교육 실시는 더이상 반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 당국은 소수 의견을 경청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부 부당한 억지 주장에 백년대계의 중대한 국가시책이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됨을 우국(憂國)의 입장에서 적극 충간하는 바이다.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 (사)전국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 이사장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

[反]사교육 늘어 학생들 부담만 커진다





얼 마 전 책을 사기 위해 모처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았다. 문학작품 진열대를 지나 국어학 역사학 사회학 등 전문서적들을 둘러봤다. 놀랍게도 문학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서적들도 하나같이 제목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내용이야 어떻든 책 제목만은 한자로 찍어야 했던 삼사십 년 전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신문도 ‘東亞日報’라는 한자 표제를 내걸고 있지만 거기 실린 논설이나 기사가 사실상 한글 전용임을 보면 그 사이 우리들의 글자살이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시점에 놀랍게도 정부가 주도해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한자 병기 문제를 들고 나왔으니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육은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마땅한데 이런 반역사적 정책이 있을 수 없다. 두 가지 이상의 글자를 뒤섞어 쓰는 나라는 일본뿐인데, 가장 완벽한 글자를 가진 우리가 그 예외적인 불구의 문자생활을 억지로 흉내라도 내자는 것인지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발랄하게 창의력을 키우며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서당공부 하듯 한가하게 한자말의 어원 풀이나 하라는 것인지. 영어 스펠링이나 어원을 몰라도 ‘서비스’라는 외래어를 자연스럽게 알고 쓰듯이 배울 학(學), 학교 교(校)자를 가르치지 않아도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학교’라는 말을 절로 알게 된다. 국어를 가르치는 게 낱말의 어원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우리말을 장면에 맞게 아름답게 부려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한자를 아는 것이 국어 공부를 하는 데 물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갓 쓰는 법, 두루마기 입는 법을 가르친다면 잘하는 일이라 하겠는가.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라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영어의 문화어는 거의 100%가 고대 희랍어와 라틴어인데 그들이 초등학교에서 ‘school’의 어원을 가르친다고 고대 희랍문자를 병기하고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라틴어를 모르고는 서양 중세문화를 논할 수 없지만 정작 그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도 초등학교에서 라틴어, 라틴문자 체계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랜 세월 한자문화 속에 살아온 한국인이 한자를 아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국어책에 한글과 함께 써서 가르쳐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좀 더 전문적인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중고교에서 국어 과목과는 별도로 한문 과목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이들은 참담하게도 한자를 우리 문자(韓字)라 우기기까지 한다. 세종대왕께서 근 600년 전에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漢字)와 일치하지 않아’ 부득이 우리 글자를 만든다는 말씀을 거역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또 그들은 한자 없이 ‘의사’라 써 놓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말이란 반드시 문맥과 장면 속에 쓰이기 때문에 ‘치과의사’ 하면 ‘醫師’이고 ‘안중근 의사’ 하면 ‘義士’인 줄 알게 되어 있다. 우리말의 ‘밤’에도 ‘밤낮’을 말하는지 ‘밤, 대추’를 말하는지 몰라서 한자로 뜻을 써 넣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이르기까지 한글과 한자가 혼용되면 한자 사교육 시장이 더욱 번창할 것이고 한자급수 인증시험 응시자도 더욱 많아져 수입이 더욱 풍성해질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온 세계 1000여 개 대학에 한국학과가 개설돼 있고 4000여 공식, 비공식 기관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한글문화, 한류문화 시대다.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궁색한 주장을 내려놓고 부디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고한다.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






오피니언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