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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천광암]시안의 꿈, 중국의 똥

입력 | 2015-06-19 03:00:00


천광암 산업부장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 회장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고, 당신은 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위험을 무릅쓰고 실천에 옮기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느냐, 즉 실행력의 차이가 세계적인 기업가와 보통 사람의 구분을 만들어낸다는 대답인 셈이다.

그런데 마윈 회장의 말을 “중국은 하고, 한국은 봅니다”로 바꿔 놓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최근 중국 서부 내륙에 위치한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 시를 둘러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시안에는 가오신(高新)개발구라는 공업지구가 있다. 총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307배에 이르고, 아직 80%가 빈 땅으로 남아있는 이 개발구에는 요즘 전자산업 분야의 첨단기업들이 연이어 진출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도 그중 하나다.

삼성SDI가 상하이(上海) 등 해안 도시에 비해 인프라도 취약하고 물류도 불편한 시안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중국 중앙정부와 이곳 지방정부의 원대한 ‘꿈’을 읽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전기자동차를 통해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자동차 강국들을 단숨에 추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내연기관의 경우는 기술 격차가 너무 커서 불가능하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인 전기자동차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자동차 대국의 꿈과 함께, 서부지역 개발이라는 또 다른 정책 목표가 맞물리면서 산시 성과 시안 시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삼성SDI의 경우 설비투자에 들어가는 금액의 절반을 보조금 등의 형태로 돌려받는다. 또한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는 기업이나 개인들에 대해서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어서 관련 기업들은 판로까지도 사실상 보장받고 있다. 전기버스의 경우는 차량 값 2억 원 중 1억 원을 정부에서 지급할 정도로 지원 규모가 크다.

삼성SDI 공장에서 7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보여준 실행력과 열정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반도체공장이 들어선 자리는 당초 밀밭과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마을에는 26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고 묘지도 적지 않았다. 지방정부가 나서서 이곳을 공터로 만드는 데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방정부는 이어 삼성전자가 공장시설을 짓는 15개월 동안 전기와 물, 도로 등 관련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춰주었다. 반도체 제조설비가 너무 커서 트럭이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자 지방정부가 나서서 톨게이트를 뜯어내는 일까지 있었다.

중국 정부의 실행력은 개발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20km 떨어진 곳에는 높이 2000, 3000m대의 봉우리가 1500km에 걸쳐 이어지는 거대한 친링(秦嶺)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안의 오염된 공기 때문에 삼성전자 공장에서 친링 산맥이 보이는 날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반대로 친링 산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날이 드물다. 지방정부가 공기 질을 개선하기로 작심한 지 1년여 만에 나타난 변화다.

조선 말 연암 박지원은 중국의 신문물을 둘러보고 열하일기라는 여행기를 남겼다. 거기에는 ‘똥 덩어리를 처리하는 방식만 보아도 천하의 제도가 다 여기에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감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놀라운 속도로 변신하는 중국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시절의 한중(韓中) 관계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