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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선수의 부담감…지소연, ‘월드컵 징크스’ 어떻게 극복할까

입력 | 2015-06-21 16:47:00


‘지메시’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도 스타 공격수들이 경험하는 ‘월드컵 징크스’를 겪고 있는 것일까.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의 대들보 지소연의 표정이 밝지 않다. 21일 16강 프랑스전을 대비한 훈련을 마친 뒤 지소연은 ‘믹스드 존(공동취재구역)’을 별다른 말없이 그대로 지나쳤다. 극적으로 16강에 올라 한층 표정이 밝아진 동료 선수들과는 달랐다. 평소 취재진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지소연이지만 이날만큼은 말을 아꼈다.

지소연은 이번 대회 예선 3경기에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상대 수비수 2,3명을 제치는 개인기와 동료들의 스피드를 살리는 날카로운 패스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패스에서 잔 실수가 많았다. 상대 수비수들이 지소연의 첫 드리블 방향 습관까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스페인전에서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지만 지소연은 “정말 내가 상을 받아도 되냐”며 고개를 흔들고 자책했다.

지소연에게 이번 대회는 낮선 고전의 연속이다. 1차전 브라질전에서는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공간 압박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전반 중반 이후에야 처음으로 볼을 잡았다. 슈팅을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2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는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 4개의 슈팅을 골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3차전에서도 후반에서야 몸이 풀렸다. 여자축구연맹 관계자는 “지소연이 1,2차전에서 부진했던 기억 때문인지 3차전 전반에는 특유의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주저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소연은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에이스로서의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큰 경기를 많이 치러본 지소연에게도 월드컵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예상을 뛰어 넘을 만큼 크다. 윤덕여 대표팀감독이 지소연을 불러 긴 시간 면담을 나눴지만 이겨내기에는 쉽지 않다.

무릎 부상으로 대회 직전 대표팀을 이탈한 여민지(22·대전 스포츠토토)와 발목 부상 중인 박은선(29·로시얀카) 때문에 지소연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것도 지소연에게는 큰 부담이다. 팀 사정상 공격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가는 지소연은 이번 월드컵에서 수비가 집중돼 있는 공간에서 볼을 받는 횟수가 많아졌다.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의 간판 공격수들은 극심한 부담에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경험하고 한창 기량이 무르익은 상황에서 1994년 미국월드컵에 나선 ‘황새’ 황선홍 포항 감독은 스페인과 볼리비아전에서 수많은 기회를 허공으로 날렸다. 엄청난 부담감에 눌렸던 황 감독은 당시 독일전에서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 대신 스스로를 탓하는 듯한 동작을 했다. 황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결승골로 비로소 월드컵 악몽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했던 차범근 전 수원 감독도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공격수로 나섰지만 기대만큼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골을 넣어야한다는 부담에 서두르다 상대의 오프사이드 작전에 걸려드는 실수가 잦았다.

지소연은 스페인전을 앞두고 “축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지소연에게 프랑스와의 16강전은 또 한 번의 고비다. 하지만 그의 축구 인생은 정점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아직은 실망하기에 이르다.

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