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靑, 대통령 홍보 말고 ‘메르스 근본대책’ 내놓으라

입력 | 2015-06-22 00:00:00


정부가 19일 모든 종합 일간지 1면에 ‘메르스, 최고의 백신은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라는 공익광고를 내면서 국민일보만 제외했다. 국민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방문 당시 병원 곳곳에 붙은 ‘살려야 한다’는 문구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청와대의 설정’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기사를 16일 인터넷판에 실었다. 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은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전화해 이 기사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기사에 대한 보복으로 국민일보에만 광고를 못하게 했다면 졸렬하다. 권위주의 시절 언론을 통제하려 했던 ‘광고 탄압’과 무엇이 다른가.

메르스 사태 대처에서 청와대가 문제 해결보다 대통령 홍보와 지엽적 사안에 몰두한다는 인상을 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메르스 환자 발생의 최초 보고부터 사태 파악과 위기 대응까지 청와대는 번번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작년엔 세월호 참사 13일 만에 박 대통령이 “초동 대응에 미흡했다”고 사죄하고 재난안전의 컨트롤타워로 국민안전처 신설을 밝혔으나 올해는 그런 입장 표명도 없다. 14일 박 대통령의 서울 동대문상가 방문 때 “시민들이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놀라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홍보자료를 보면 청와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박 대통령의 안일한 인식과 태도 역시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16일 박 대통령이 서울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찾아 “정부는 더욱 적극적 선도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심각한 것은 빨리 국민께 알려 나갔으면 한다”라고 말한 것은 ‘유체이탈 화법’의 전형으로 들린다. 정보 공개를 미룬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문책해도 시원찮을 판에 “정부가 알려 나갔으면 한다”라니, 박근혜 정부와 박 대통령은 딴 몸이란 말인가.

지난 주말 메르스 신규 환자가 3명 증가에 그쳐 이제 메르스 사태는 최대 고비를 넘긴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 긴장을 늦추기는 이르다. ‘메르스의 끝’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기후변화, 도시화, 인적 물적 교류의 증가로 제2, 제3의 신종 감염병은 언제든 국내에 유입될 수 있다. 감염병은 국민의 생명뿐 아니라 경제까지 위험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보건안보’ 차원에서 관리돼야 한다. 박 대통령이 19일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메르스 발병을 계기로 신종 감염병에 대한 방역체계를 근본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점검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메르스 사태 속에 드러난 취약한 공중보건 체계, 병원의 허술한 감염관리 등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위기극복 리더십’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때는 “과거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한스럽다”며 공직사회 개혁을 예고했지만 이번엔 적폐를 탓할 수도 없다. 2003년 사스 방어에 성공했던 정부가 2015년 메르스 대처에 실패한 것은 결국 박 대통령의 책임이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 공직사회 개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다시 ‘국가개조’를 외칠 필요는 없다.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공공보건 시스템 개혁 등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는 일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를 참조하되 국민안전처 신설처럼 부처 하나 더 만드는 대책이어선 안 된다. 정부의 역량과 공복(公僕)의식을 높이는 근본 해법은 반드시 병행돼야 할 것이다. 메르스 이후의 이런 국가적 과제에 대해 이제 박 대통령이 답안을 내놓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