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정상 수교기념식 교차참석]
한일 정상의 고민은 깊었다. 22일 각각 자국 수도에서 개최되는 ‘수교 50주년 기념식’ 교차 참석 결정은 행사 하루 전날에서야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막판까지 여론 동향을 주시했다는 얘기로 그만큼 한일 양국 간 불신은 깊고, 관계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힘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일본, 박 대통령 축사 수위에 촉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측은 이달 초부터 한국대사관 행사 참석을 두고 한국과 협의해 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상응 조치(일본대사관 주최 서울 기념식 참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베 총리가 불참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았다. 일본은 불참 사유에 대해 “국회 일정이 빠듯하다”는 핑계를 댔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자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집단 자위권’과 관련된 안보 법안이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여름 내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워지자 국회 일정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지난 주말을 거치며 참석 쪽으로 기류가 급변했다.
○ 한일, 정상회담 필요성은 공감
21일 도쿄에서는 한일 외교장관회의도 열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장관 취임 후 2년 반 만에 처음이다. 윤 장관은 22일 아베 총리를 예방해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의 메신저는 특사 자격으로 22일 한국을 방문하는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박 대통령을 예방할 것으로 보이는 누카가 회장이 특사 자격으로 아베 총리의 친서를 갖고 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일 양국이 △대사관 행사 교차 참석 △정상 메시지 교환을 한 뒤엔 실무 채널을 통해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은 정상회담 개최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사전 정지작업이 중요하다. 윤 장관도 21일 기자들과 만나 “정상회담이 성공적인 회담이 되려면 여러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양국관계 개선을 막는 몇 가지 장애물이 빨리 제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흥수 주일대사는 20일 보도된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 정상회담의 전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 아베 총리의 8·15 담화가 관건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 등 우경화 문제로 2012년 이후 중단됐다. 하지만 중일은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올해 4월 말레이시아의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일본이 얼마나 한국의 기대에 부응하느냐에 따라 한중일-한일 연쇄 정상회담의 성사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일 정상회담의 의장국을 한국이 맡고 있어 회의 주최 장소와 날짜도 한국이 주도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양국이 8차례 국장급 협의를 가졌음에도 일본 측이 책임 인정보다 △위안부 피해자를 성노예라고 부르지 말 것 △위안부 소녀상 철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소식통은 “지난해까지 일본은 ‘무조건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두 차례 중일 정상회담 이후 ‘굳이 한국과의 정상회담이 필요한가’라는 다소 여유 있는 태도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다만 21일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된 만큼 이에 부합하는 일본의 행보가 나올지 주목된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