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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GDP격차 30배→3.8배… 외교 영향력은 日이 압도적

입력 | 2015-06-22 03:00:00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한일관계, 제대로 알자]<上>뚜렷이 앞서는 일본의 국력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가 ‘왜(倭)’라고 불렀던 일본은 과연 얕잡아 봐도 되는 나라일까. 조세영 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은 21일 “일본을 상대할 때는 치밀한 논리적 무장과 얼음 같은 냉정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얘기만 나오면 감정만 앞세우는 우리의 ‘근거 없는 자신감’ 대신 철저한 대비를 하자는 뜻에서 3회에 걸쳐 냉정한 한일 관계의 현재를 비교한다.

○ 일본 국력, 여전히 한국의 2, 3배


한일 수교가 이뤄지던 1965년, 세계은행 기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909억5028만 달러였다. 당시 한국의 GDP는 30억1761만 달러. 양국 간 경제력 차이는 30배가 넘었다. 2013년 한국의 GDP는 약 1조3046억 달러로 약 50년 만에 경제력이 400배 가까이 커졌지만 여전히 일본 GDP(약 4조9196억 달러)의 3분의 1에 못미친다.

한국이 공적개발지원(ODA)의 꿈도 꾸지 못하던 1965년 일본은 2억4370만 달러를 해외에 원조했다. 2009년 한국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했다. 하지만 일본의 ODA는 117억8611만 달러, 한국(17억4364만 달러)의 6배 이상이다. 국력의 기본인 인구, 국토면적, 군사력에서도 차이는 크다.

○ 일본의 외교 파워

유엔 본부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은 111명. 일본은 203명이다(전문직 P급 이상). 국제기구 진출자도 일본이 2배가량 많다. 특히 일본은 국제기구 책임자를 전략적으로 길러왔다.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외무성 과학원자력과장, 군축비확산과학부장, 핵확산금지조약(NPT) 의장, 제네바 군축회의 대표 등 20년 이상 군축·비확산 분야만 천착해 IAEA 사무총장까지 거머쥐었다. 반기문의 개인기와 국가 차원의 벼락치기 지원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과 차이가 크다.

외교관 수(한국 2505명, 일본 5787명), 외교예산(한국 1조9923억 원, 일본 5조7337억 원), 재외공관 수(한국 161개, 일본 196개)의 격차도 뚜렷하다.

○ 일본의 실리중심 외교 눈길

한국보다 훨씬 ‘친미’ 성향인 일본은 1952년 쿠바와 외교관계를 회복(1929년 첫 수교,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교전)한 뒤 1960년 통상협정도 체결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쿠바에 대사관이 없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올해 국회에 출석해 “연내 쿠바와 수교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남북관계, 한미동맹에 발목 잡힌 한국과 달리 일본은 실리 외교를 표방하며 국경을 넘나들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러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좌고우면하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데 이어 연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하는 종횡무진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금(한국 279만9476달러, 일본 1521만394달러), 유엔개발계획 기여금(한국 2275만 달러, 일본 3억8006만 달러) 등 저소득 국가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미국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에서도 올해 1170만 달러(약 119억 원)를 쏟아 부어 15억 원에 불과한 한국을 크게 앞섰다.

○ “일본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일 격차를 직시하는 것만큼 양국 관계를 ‘차가운 머리’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리적 지한파인 오누마 야스아키(大沼保昭) 일본 메이지대 교수는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충분한 반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1990년대 이후 있었던 일본의 노력을 한국이 전혀 평가해주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무라야마(村山), 고노(河野) 담화를 통한 일본 나름의 노력을 한국이 ‘법적 책임 인정이 아니다’라며 외면하자 아베 총리와 같은 우익들의 반동을 꾀하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일본의 우호적인 행동을 그 자체로 평가해줄 필요도 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허베이호 기름유출 사고 때 한국 흡착포 재고가 바닥나자 서해를 마주한 중국은 “와서 흡착포를 사가라”며 배짱을 부렸지만 일본은 65t의 흡착포를 무상 지원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외교부 간부는 “일본이 한국의 요청을 받고 이틀 만에 전세기로 흡착포를 보내줬는데도 한국 언론에는 기사 한 줄 나지 않아 민망했다”고 말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윤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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