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특파원
이승헌 특파원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희생자 미라 톰프슨의 남편인 앤서니 톰프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우리 가족도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은 우리의 용서를 참회의 기회로 삼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분노와 고함보다는 슬픔을 속으로 꾹꾹 눌러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자 재판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용서 릴레이’는 계속됐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펠리시아 샌더스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였다”면서도 “내 몸에 있는 살점 하나하나가 모두 아프고 나는 (사고) 이전처럼 살아가지 못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기도하겠다”며 힘겹게 말했다. 어머니가 숨진 네이딘 콜리어는 “엄마를 다시 안을 수 없고 함께 얘기를 할 수도 없다. 많은 이들이 당신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할 것이고 나도 당신을 용서한다”고 했다.
사건 직후 “아직 미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며 분노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희생자 가족의 반응에서 미국인의 선량함이 묻어나온다. 끔찍한 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품위와 선량함이 빛난다”고 말했다.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한 사회의 수준이나 국격이 드러날 수 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 후 시의 구호가 ‘보스턴은 강하다(Boston Strong)’가 된 것처럼, 오히려 슬픔을 통해 사회가 결속하고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라일리 찰스턴 시장은 20일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미친 생각을 품고 찾아왔지만 이 공동체는 분리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 단단하게 결속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과연 우리는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얼마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나 현재 진행 중인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는 여전히 너무 쉽게 흥분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