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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취약한 경영권 보호장치 시급

입력 | 2015-06-23 03:00:00

[해외투기자본 한국 공습]<3> 한국기업 먹잇감 안되려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브레이크를 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대해 삼성 측이 내놓은 대응 카드는 자사주 5.76%를 KCC에 매각한 것밖에 없다. 자본시장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현행법상 자사주 매각 외에는 쓸 수 있는 대응 조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경영권 보호 장치가 부족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경영권 위협 노출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가운데 경영진의 우호지분이 15% 이하인 기업은 100여 곳으로 집계됐다. 우호지분이 낮을수록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 우호지분 비중이 낮은 기업 대부분은 외국인 기관투자가의 지분이 높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엘리엇과 같은 해외 자본의 국내 기업 투자에 대한 규제가 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대거 완화됐기 때문이다. 1997년 4월 대량주식 소유제한 폐지를 시작으로 의무 공개 매수, 외국인이 10% 이상 주식 취득 시 이사회 동의 등의 규제가 줄줄이 폐지됐다.

문제는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단기 차익을 급격히 늘리거나 적대적 M&A를 노리는 투기자본의 유입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진 지분이 적은 기업은 투기자본의 좋은 먹잇감이다.

하지만 국내 제도는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이후에도 이를 보완할 만한 대체 수단 없이 경영권 남용 가능성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적절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 보니 경영진이 방어에 골몰해 투자나 고용이 정체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경영권 보호 장치 도입이 시급

재계는 해외 투기자본의 공습에 대응하기 위해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보호 장치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 선진국들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런 장치들을 도입했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매수자 등장 시 그를 제외한 모든 주주가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10년 국내 도입이 검토됐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됐다. 차등의결권은 주식마다 의결권을 달리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경영진이나 장기 보유자의 의결권을 보호하고, 시세 차익과 배당을 목표로 한 투자자의 선택권도 보장하자는 취지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지배권 남용을 막는 데만 집중해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면 소수주주가 실제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계 투기자본이 이를 악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사업을 재편할 때를 노린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경련과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22일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제정 방안에 대해 “소규모 합병 반대 요건의 현행 유지와 주식매수청구권 남용 제한 등 사업 재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대폭 보완해야 한다”고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정부가 지난달 말 공개한 원샷법 연구용역안은 소규모 합병(합병을 위해 새로 발행되는 주식이 기존 주식의 10% 이하일 경우) 반대 요건을 20%에서 10%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투기자본이 10%의 지분만 확보해도 합병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대신 사업 재편 승인을 받은 상장기업에 대해선 주식매수청구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전경련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주식을 매각한 후 시장에서 싼 가격에 재취득하거나 합병을 반대해 놓고 가격에 따라 매수 청구를 하지 않는 등 남용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한국 재벌 기업의 오너들이 경영 절차의 투명성을 보다 강화해 주주들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도 나온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