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관습적으로 ‘이때쯤에는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어?’ 하고 예측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이십대 후반쯤이면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른을 넘긴 지금은 한 시간 남짓 예식에 쓰인다는 비용마저 결코 가볍게 여길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예단, 예물, 혼수, 무엇보다 앞으로 살게 될 집을 떠올리면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 하는 생각은 들지만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흘려 넘기게 된다. 이제는 어느 때보다 행복할 ‘허니문’마저 ‘푸어’라는 삭막한 꼬리를 달게 되었다니 ‘결혼 못 권하는 사회’라는 말에 실로 공감을 하게 된다.
‘임들아∼ 이번 주 일요일 날 꼭 와서 사진도 찍어주길 바라∼ 부탁할게.’ 오랫동안 대화가 없던 메신저 단체방이 일순 바빠지기 시작했다. 두어 번 얼굴을 본 적 있는 J와 함께 속한 방이었다. 평일에는 새벽까지 사무실을 지키고 주말에는 밀린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던 모양이다. 미리 자리를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는 J가 결혼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하다. ‘축하’와 ‘부탁’의 조합이 자못 생소하게 느껴졌다. 축하를 부탁해야 하는 심정에서 왠지 모를 불안한 기운마저 감도니 ‘가야 돼, 말아야 돼’ 다시 또 골치 아픈 고민을 하게 됐다.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다 보니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기가 여간 쉽지 않다. 결혼식이라고 예외일 순 없을 거다. 식장 안 하객의 머릿수를 헤아려 신랑이나 신부의 됨됨이를 채점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객이 많지 않다=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인간성에 문제가 있다’ 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빈곤함이 괴상한 결론을 도출하고 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모쪼록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해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비교적 하객의 수가 적었던 한 예식장에서는 “잘 좀 살지” 하고 수군거리며 침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정신을 쏙 빼고 서 있는 신랑에게 다가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물으며 기어이 실례를 범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먹고살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하고 난처해하는 신랑의 목소리가 요즘에도 문득 떠오를 때가 많다.
참석을 부탁하던 J의 심정 또한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기 어려운 이 땅의 결혼식 풍경과 무관하진 않았을 테다. 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는 하객 대행 서비스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하객 품앗이를 모집하는 글이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실감하게 한다. 은연중 ‘보여주기’를 조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예식을 준비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마냥 편할 리 없다. ‘빈자리가 많으면 어떡하지’ 하고 졸이는 마음은 내가 가만히 앉아 해보는 상상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간혹 듣게 되는 ‘작은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에 자꾸 눈이 가게 된다. 아무래도 무리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장면에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