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문화부장
주말에 신경숙 작가의 자전적 소설 ‘외딴방’(1995년)을 다시 꺼내 읽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책들이 아닌 ‘외딴방’을 뽑아 든 건, 등단 30년과 작가인생 최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는 그의 초심(初心)을 보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과거는 현재형으로, 현재는 과거형으로 독특하게 쓴 이 작품엔 그의 습작 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 “주산시간에 국어 노트 뒷장을 펴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옮겨본다. … 이제 열일곱의 나는 컨베이어 위에서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옮기고 있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볼 때와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소설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는 양감을 훨씬 더 세밀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부조리들, 그 절망감들, 그 미학들.”(‘필사로 보냈던 여름방학’)
표절 의혹이 불거진 직후 적지 않은 작가들이 그를 감쌌다. 습작 과정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신 씨는 의혹 제기 하루 만에 너무도 단호하게 모르는 작품이라고 했다. 긴 시간 필사해 온 만큼 혹시나 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려는 최소한의 자성은 없었다. 독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건 표절 논란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 이후에 보인 신 씨의 이런 태도 같다. ‘전혀 모르는 일’ ‘믿어 달라’는 그동안 너무 많이 속아 온(?) 얘기니까. 그나마도 창비를 통한 ‘대리 발표’였다.
창비는 한술 더 떴다. “(표절 논란 대목을) 굳이 따진다면 신경숙 작가가 오히려 더 낫다”는 입장을 발표해 되레 ‘오만한 갑(甲)’의 이미지마저 덧씌웠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표절 의혹 대목을 비꼬는 수많은 패러디가 등장했다. 급기야 창비는 “본사 문학출판부가 내부 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냈다”고 하루 뒤 다시 입장을 발표했지만 ‘사과인 듯 사과 아닌’ 해명은 역효과만 불렀다. 이젠 백낙청 창비 편집인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위기관리 측면에서 본다면 창비의 대응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구속까지 불러온 ‘땅콩 회항’의 사과문 이후 최악으로 꼽힐 것 같다. 당시 대한항공은 사과문에서 한 문장만 빼곤 조현아 전 부사장을 두둔하는 변명으로 일관하다 사태를 키웠다.
다시 ‘외딴방’. 신경숙은 이 소설의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을 똑같은 질문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이제는, 대답해야 할 때다.
강수진 문화부장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