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메르스를 막아라]<2>사태 키운 비밀주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과정에서 보건당국이 보인 소극적인 정보 공개 자세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신종 감염병 발생이란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보건당국이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 대신 ‘일단 숨기고 보는’ 구시대적인 대응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 정보 공개했으면 슈퍼 전파자 감염 줄였다
메르스 사태에서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건 ‘슈퍼 전파자’들의 양산이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중심으로 83명을 감염시킨 14번 환자(35)와 대전 대청병원과 건양대병원 입원실에서 23명을 감염시킨 16번 환자(40)의 경우 여러 병원을 거쳐 갔다.
지난달 20일 1번 환자(68)가 확인됐을 때부터 적어도 의료기관들 사이에서라도 환자와 메르스 관련 정보가 자세히 전달됐다면 호흡기질환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병원들의 대응이 훨씬 더 적극적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감염자 수도 어떤 형태로든 줄어들었을 것이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양재명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첫 환자 발생 뒤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됐다면 병원 현장에서의 긴장도가 높아 초기 진압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동경희대병원 관계자는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사태 초기부터 정보 공개와 공유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면 76번 환자가 도착했을 때부터 의심을 갖고 조치해 접촉자도 크게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141번 환자(42)가 5∼8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광 산업에 비상’이 걸린 사건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만약 지난달 말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것이 공개됐다면 제주도 여행 시점에 이미 메르스 증세를 보이던 141번 환자가 본인 스스로 의심해 제주도 여행을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보건당국 ‘비공개 원칙’ 강조하다 신뢰 훼손
보건당국의 늑장 정보 공개가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많다.
정보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던 과정에서 보건당국 스스로가 큰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갑작스럽게 메르스 환자와 병원 정보를 공개하고 나섰고, 6일에는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이 1차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에 대한 일부 정보를 SNS에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 움직임이 나타났고,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는 더욱 훼손됐다. 백혜진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는 “소통 부재 속에서 더 큰 사회적 혼란과 불신, 나아가 패닉 현상까지 나타났다”며 “정부는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 감염병 정보 공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
적극적으로 병원과 환자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뒤에도 보건당국의 조치에는 문제가 많았다. 보건당국이 운영하는 메르스 종합 정보 사이트인 ‘메르스 포털(www.mers.go.kr)’의 경우 첫 환자가 확인된 뒤 3주가 지난 10일에야 개설됐다. 메르스 포털은 정식 개설된 뒤에도 △어려운 설명 △느린 업데이트 △외국어 서비스 부재 등의 결함으로 비판을 받아 왔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 지침’에도 정보 공개 절차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정보 공개를 얼마나 할 것인지,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공인된 매뉴얼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감염병에 대한 정보 공개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체적인 감염병 위기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개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김민·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