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가 금융권에 맡긴 돈에서 빌린 돈을 뺀 잉여 자금의 규모가 최근 크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와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가계가 돈 씀씀이를 줄인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1분기 중 자금순환’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 규모는 29조6000억 원으로 작년 4분기(10~12월)의 14조5000억 원에 비해 15조1000억 원 늘었다. 지난해 1분기(28조8000억 원)와 비교해도 8000억 원 많은 규모로 새 국제기준(2008 SNA)을 적용해 자금순환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치다.
자금잉여는 예금, 보험, 주식·채권 투자 등으로 굴린 돈(자금운용)에서 금융회사로부터 차임한 돈(자금조달)을 뺀 것이다. 즉 자금잉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돈을 바로 쓰지 않고 금융회사에 쌓아뒀다는 뜻이다. 자금운용 규모는 지난해 1분기 35조4000억 원이었지만 1년 뒤인 올 1분기에는 43조7000억 원으로 8조3000억 원 늘었다.
가계소득은 최근 유가 하락 등으로 국민총소득(GNI)이 크게 늘어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1분기 실질 GNI는 전 분기 대비 4.2% 증가하며 5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그러나 소득 증가와 별개로 가계의 씀씀이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1분기 민간 소비는 전 분기 대비 0.6% 증가에 그치며 여전히 미미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가계소비 위축의 여파로 올 1분기 총저축률은 36.5%까지 상승해 1분기 기준으로 1998년(40.6%)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였다. 총저축률은 국민들이 쓸 수 있는 소득 가운데 안 쓰고 남긴 소득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경기침체 시기의 저축률 증가는 소비심리가 크게 둔화될 때 주로 발생한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