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반도의 항구도시 케이프타운에서 14km 거리의 로벤 섬의 모습을 담은 그림엽서. 인터넷에서 수집.
그날 아침 나는 여객선을 타고 케이프타운을 떠났다. 이 엽서에 등장한 로벤 섬을 향해서다. 케이프타운에서 14km쯤 떨어진, 그래서 코앞이라고 부를 만한 이 무인도는 슬픈 역사로 점철된 섬이다. 지난 세기 남아공의 백인 정부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던 흑인 인권운동가들을 가두었던 악명 높은 감옥이 있어서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도 27년간의 수형생활 중 18년을 이 안의 2평(6.6m²)도 안 되는 감방(2m×3m)에서 보냈다.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로벤 섬은 역설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의 기념비가 됐다. 그래서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나의 방문은 좀 달랐다. 남아공 월드컵 유치의 결정적 배경인 ‘마카나축구협회(MFA)’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서였다. MFA는 1968년 당시 3000명의 수감자들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조직과 구성, 운영 방식을 고스란히 본떠 만든 감옥 내 축구기구다. 거기엔 일곱 팀이 있었고 각 팀은 토요일마다 교도소 내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쳤다. 마카나는 1819년 영국군에 맞서 싸우다 여기 감금됐던 전설적인 코사족 지도자의 이름이었다.
이렇듯 MFA는 축구의 위대함을 증명한 조직이었다. FIFA도 그 평가에 동의한 듯하다. 2007년 7월 18일 교도소에서 펼친 행사가 그 증거다. 그날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89세 생일. MFA와 FIFA의 지도부(제프 블라터 회장과 집행위원들) 등 89명은 MFA 리그의 현장이던 운동장에 모여 제각각 한 개씩, 모두 89개의 축구공을 골대에 차 넣었다. 이 특별한 세리머니는 이날 FIFA의 결정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정이란 MFA의 FIFA 명예회원 등록. 사설단체가 FIFA 회원이 된 것은 FIFA 111년 역사상 처음이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MFA가 축구의 이상, 즉 공은 둥글고 둥근 공은 자유와 평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이 장면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209개국이라는 가입 국가 수는 유엔회원국을 넘어서고, 경기 몰입도와 열기는 올림픽을 능가하는 ‘축구세계정부’ FIFA에 대한 신뢰는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당시는 남아공이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2004년 5월 이후 3년이 지난 뒤였다. 미국 법무부의 기소장대로라면 FIFA의 부회장이 유치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1000만 달러(약 116억 원)의 뇌물을 받아 꿀꺽한 뒤다. 따라서 이날 행사는 세상을 우롱한 사기극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공차기 직후엔 케이프타운에서 자선축구경기로 ‘만델라를 위한 90분’도 진행됐다. 거기선 축구황제 펠레까지 뛰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생일을 축구 행사로 축하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코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남아공 월드컵 유치의 일등공신은 만델라의 도덕적 권위였기 때문이라는 것. 아파르트헤이트로 핍박받던 로벤 섬 수감자에게 축구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었음은 불문가지. 동료 수감자 안토니 수즈(MFA 최강팀 마농의 공격수)는 “축구는 생존의 한 방식이자, 비인간적 착취에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힘이었다”고 했다. 남아공 월드컵 유치가 세상의 박수를 받은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남아공 월드컵 자체가 아파르트헤이트 극복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FIFA 집행부는 어땠는가. 그걸 뇌물잔치판으로 악용했다. 그래서 제안한다. FIFA를 로벤 섬 교도소에 수감하라고.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