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키운 것은 최악의 보건 라인업과 불통의 바이러스 불은 서울서 났는데 오송의 소방서는 무기력 大실책 꼼꼼히 복기해야 제2, 제3의 메르스 막는다
황호택 논설주간
삼성서울병원이 동네북이 됐지만 질병관리본부(질본)를 채근해 1번 환자를 찾아낸 공적은 인정할 만하다. 경기 평택성모병원 등 3개 병원을 돌며 메르스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1번 환자의 확진이 늦어졌더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5월 18일 바레인에 다녀온 사람이 메르스 환자로 의심되니 검사해 달라는 삼성서울병원의 요청을 받고도 질본은 “바레인은 메르스 발병 지역이 아니다. 다른 12가지 호흡기 질환이 아닌지 검사하라”고 동문서답했다. 삼성서울병원이 12가지 검사를 마치고 메르스 검사를 재요청하고 나서야 질본이 검체를 가져가 20일 확진 판정을 내렸다.
1994∼9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학조사 전문위원을 지낸 강대희 서울대 의대학장은 “한국의 질본은 돈, 사람, 힘이 없는 3무(無) 조직이라서 일이 생기거나 문의가 오면 귀찮아한다”고 말했다. CDC는 1만5000명의 직원에 연간 11조 원 정도의 예산을 사용한다. CDC는 전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대중시설 폐쇄, 교통 차단, 경찰 소방인력 동원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한국의 질본에서는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 다 대학으로 떠나는 형편이다. 질본이 충북 오송에 있는 것도 우수 인력이 질본 근무를 기피하는 이유다. 불은 서울서 났는데 소방서는 오송에 있고 그나마 실력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 메르스 사태를 키운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다.
국내 최고 병원으로 꼽히는 삼성서울병원과 송재훈 원장도 자기 함정에 빠졌다. 송 원장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으로 방역당국에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정부도 삼성서울병원을 믿은 나머지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민간과 당국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송 원장은 메르스가 확산일로를 치닫던 시기에 ‘메르스 전사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야 하는데 오히려 숱한 질책과 비난을 받으며 무력화해가는 느낌을 받는다’는 요지의 신문기고를 했다. 가장 많은 확진자를 발생시킨 병원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삼성서울병원이 바이러스를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음압(陰壓) 병실 하나도 갖추지 않고 있었던 것도 의료의 공공성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보건 라인업은 최악이었다. 정작 보건복지부에 복지와 연금만 있고 보건은 없었다. 총괄 권한이 없는 질병관리본부장(1급)이 연금 전문가인 문형표 장관과 주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한 장옥주 차관에게 설명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불려 다니느라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했다.
문 장관은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도록 총력대응을 하겠다”고 했지만 대형 구멍이 숭숭 뚫렸다. 문 장관은 보건복지위 보고에서 아직까지 3차 감염이 보고된 사례는 없다고 했지만 3차 감염, 4차 감염 환자까지 나왔다. 문 장관은 6월 2일 브리핑에서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
했는데 그 전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진이 노출됐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허언을 거듭한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요즘 그는 TV 화면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마 위에서 국민 불안 해소에 도움이 안 되니 나가지 말라고 한 것 같다. 주무 장관의 실종 사건이다.
메르스 확산은 방심과 무능, 잘못된 조직과 인사, 자만과 불통의 바이러스가 어우러져 빚어진 국민보건의 참사다. 메르스 종식 선언을 한 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하나하나 규명해야만 추락한 보건과 방역을 바로 세울 수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