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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대신 문단 눈치… 문체미학-단편 위주 ‘골방문학’ 전락

입력 | 2015-06-25 03:00:00

[한국문학 뿌리부터 바꾸자] <중>외면 받는 문학 ‘빈사상태’




24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소설 서가. 한국 소설과 외국 소설 베스트셀러가 나란히 놓여 있는 코너 앞에서 독자 2명이 책을 고르고 있다. 한 여성 독자는 “신경숙 씨 표절 논란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당분간 읽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소설가) 신경숙 씨와 출판사의 어이없는 해명을 보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어요. 당분간 한국 소설은 덮어두고 외국 소설만 골라 읽을 거예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소설 코너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 씨(26·여)의 목소리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한국 소설을 매달 꾸준히 사서 읽었다는 그는 “신경숙 씨 책은 중고서점에 곧 내놓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해외 소설 코너에서 만난 직장인 신모 씨(33·여)는 “한국 소설이 표현, 소재, 줄거리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우리 작가니까 애정을 갖고 읽었다”며 “신 씨 표절 논란을 보면서 그마저도 베낀 것 같은 생각에 해외 소설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소설의 하락세가 가파르다. 24일 동아일보가 온라인서점 예스24와 함께 2005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국내 문학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2010년까지 상승세를 유지했던 것이 2011년 이후 기세가 꺾였다. 2011년에는 13%, 2013년 16.6%, 2014년에는 무려 17%나 전년 대비 판매가 감소했다. 2012년 한 해만 전년 대비 6.1%의 상승세를 보였는데 이는 문인이 아닌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안철수의 생각’이 그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년 상반기 대비 33%나 판매량이 감소했다.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국내 문학은 12권이 포함됐지만 그림책 또는 에세이였을 뿐 창작 소설이나 시집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예스24 관계자는 “이야기나 형식 면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 세대의 요구에 한국 문학이 아직 대답을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이 독자들에게 외면받은 이유는 뭘까.

출판 현장에선 무엇보다 독자 중심이 아닌 문단 중심의 출판 방식을 꼽는다. 출판사의 문학 편집자 5명은 전화 인터뷰에서 문학 문예지 게재를 위한 단편 위주 집필과 요즘 독자가 원하는 스토리텔링 발굴이 아닌 문체 미학에의 집착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실제 독자들은 단편소설집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 하지만 우리 문단의 경우 등단 뒤 단편을 발표해 문예지에 게재하고 평단의 인정을 받은 뒤에야 장편 집필에 들어가는 구조가 정착돼 있다. 편집자 A 씨는 “단편은 삶의 찰나에 깊이 파고들어가는 문학성은 깊지만 정작 사람 사는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며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읽기 어렵거나 재미없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문체 미학에 집착해 ‘골방 문학’에만 갇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편집자 B 씨는 “문장에만 집착하느라 책상머리에 앉아 필사를 하고 있으니 현장 취재를 통한 새로운 소재나 스토리텔링 발굴이 되지 않고 있다”며 “어설픈 디테일을 보면서 편집자로서 답답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미문과 감성에 주력하는 단편과 달리 장편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종목’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국내 작가들은 서사 구조가 취약한, ‘단편 같은 장편’을 쓰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 C 씨도 “국내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이 스마트폰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며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스토리텔링 없이는 이젠 소설이 읽히기 어려운 때”라고 말했다. 기존 글쓰기의 답습이 아닌,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향 전환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순문학의 죽음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이야기의 힘을 계속 무시했다간 앞으로 문단은 권력이라는 말을 갖다 쓰기도 민망한 종이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