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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성호]과잉과 늑장 사이

입력 | 2015-06-25 03:00:00


이성호 사회부 차장

‘긴급 브리핑 공지’라는 제목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건 4일 오후 9시 26분. 예고된 브리핑 시간은 약 1시간 뒤인 10시 30분. 서울시청 담당기자들은 모두 똑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사회부 기자들은 ‘긴급’이 붙은 공지를 종종 접하긴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 갑작스러운 브리핑은 그리 흔치 않다.

기자들이 서울시청에 속속 모여들었고 오후 10시 46분 브리핑이 시작됐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주요 내용은 알려진 바와 같이 35번째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동선이었다. 이날 박 시장의 긴급 브리핑은 말 그대로 ‘긴급히’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9시 청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 간부회의 때 박 시장이 사전 계획에 없던 브리핑 개최를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이날 한밤 브리핑을 놓고 지금까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감염 가능성을 정밀하게 따지지 않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비판과 선제적 조치로 위험성을 낮췄다는 칭찬이 엇갈린다. 논란이 커지자 박 시장은 6일 “시민안전 앞에선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고 반박했다.

필자는 박 시장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적절한 때를 놓친 대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지금 전 국민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잉대응만 떼어놓고 보면 여전히 의문스럽다. 위기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과잉도 늑장도 아니다. 바로 정확한 대응이다.

만약 누군가가 박 시장의 한밤 브리핑과 조치가 정확한 대응이었느냐고 질문한다면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발표 내용 중에는 일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포함됐고 대책 없는 실명 공개로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봤다. 35번 환자는 언론을 통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서울시는 밀접 접촉 여부와 상관없이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 전원에게 자가 격리 조치를 내렸다.

그래도 당시 과감하고 선제적인 서울시 조치 덕분에 메르스 경각심이(혹은 메르스 공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후 서울시가 내린 일부 조치는 과감이나 선제 같은 표현과 어울리지 않았다. 서울시는 메르스 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시험을 강행했고 자가 격리자 응시 여부를 놓고선 오락가락했다. 삼성서울병원 민간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의 대중교통 이용 현황은 언론 보도 뒤에야 공개됐다.

자가 격리됐던 재건축 총회 참석자에게 자체 예산으로 긴급생계비를 지원키로 한 것도 뒷말이 많다. 생업을 포기한 채 격리생활을 했던 주민에게 생계비를 주는 건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 주민은 쏙 빠졌다. 서울시로부터 자가 격리 대상자 통보를 받은 타 시도 주민이나 협조 요청에 순순히 따른 지자체들은 졸지에 바보가 됐다. 국비 지원을 제한한 정부에 화살을 돌리고 해당 지자체가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논리는 너무 소극적이다. 이는 정확한 대응도 아닐뿐더러 과잉대응보다 못한 늑장대응에 불과하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