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의식 못하는 표절 더 위험
신 씨는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나 역시 오래전 금각사와 우국을 읽어봤지만 금각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금각사의 제목만 기억했다. 우국은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 김항의 ‘제국 일본의 사상’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 나오는 우국의 내용을 보고서야 ‘아, 그 책’ 하며 떠올린 경험이 있다.
미시마의 대표작은 금각사라고 하지만 미시마 자신은 금각사보다 우국을 더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신 씨가 우국이란 작품의 중요성을 몰랐다면 제목까지 기억해둘 필요를 못 느꼈을 수 있다. 다만 우국은 플롯이 선명하고 표현이 강렬해서 작가 지망생이라면 뭔가 적어두고 싶었을 책이다.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 읽고 필사하면서 기억에 담아두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대로 끄집어냈다는 식의 설명은 비현실적이다. 번역본 아니면 그것을 필사한 노트를 앞에 놓고 ‘전설’을 썼다고 본다. 다만 지금은 번역본도, 필사한 노트도, 심지어 그것을 필사했다는 기억마저도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신 씨의 말을 믿는다. 하지만 표절하는 사람이 한 번만 표절하는 법은 없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표절한 사람은 반드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또 표절하게 돼 있다. 책을 읽은 기억도, 필사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면 신 씨가 의식하지 못하는 더 많은 표절이 신 씨의 작품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다른 표절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표절이라고 해서 의식하는 표절보다 덜 위험한 것은 아니다.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보니 이런 글이 올라 있다.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예스터데이’를 작곡해 놓고도 너무 귀에 익어 다른 누군가가 과거에 만든 노래가 아닐까 의심하고 주변에 계속 물어봤다고 한다.
작가가 일반인과 다른 점
‘의식하지 못하는 표절’은 중요한 철학적 주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인용으로만 된 글을 써보려 했다. 우리의 생각 중에 정말 우리 자신의 생각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어디선가 보고 들은 것이다. 어디서 습득했는지 일일이 찾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작가는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을 구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다른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