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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나도 ‘삼시세끼’…농사펀드 박종범 대표의 농촌창업 꿀 팁

입력 | 2015-06-25 11:00:00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경영학석사(MBA)가 무슨 소용이냐, 당장 농대(農大)로 가라.”

‘월가의 인디애나 존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지난해 서울대 경영대 MBA 과정 학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앞으로 20¤30년 안에 농업이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 영역이 될 것이니 부자가 되려 한다면 농업 학위를 따라는 것이다.

농업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정부도 최근 농식품 벤처 1800개 창업과 일자리 1만2000개 창출을 골자로 한 ‘농식품 벤처·창업 생태계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 이제 농업과 농촌에서 찾으세요”라는 정부의 정책브리핑은 스펙 쌓기에 파김치가 된 학생, 먼지 같은 일만 하다가 먼지가 될 뻔 한 직장인 미생(未生)의 귀를 잡아당긴다.

2030 청년들이 농촌 창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농촌기획자’로 불리는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36)에게 비법을 물었다.

2013년 농업에 크라우드 펀딩을 접목한 농사펀드를 만든 박 대표는 지난해 주식회사 형태로 농사펀드를 설립했다. 농부에게 농사 자금을 투자하고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건강한 먹거리로 돌려받는 방식이다. 농부는 중간 농사 과정을 공개하고, 투자자들이 직접 가서 일손을 돕는 이벤트도 한다. 현재 농사 펀드에는 농부 47명, 회원 1000명이 활동 중이다.

박 대표가 농촌 일을 한 것은 농사펀드가 처음은 아니다. 그전에는 농촌체험 사이트 ‘농촌넷’ 전략기획 팀장으로 정보화마을 운영사업단의 마을컨설팅 업무를 담당했고, 농수산식품 유통기업 ‘총각네 야채가게’ 온라인 쇼핑몰 창립멤버로도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CJ 크리에이티브 포럼’에 농촌기획자 타이틀로 나와 청년 창농(創農·농촌 창업)을 주제로 토크쇼도 했다. tvN ‘삼시세끼’의 주인장 이서진 씨도 당시 패널로 나왔다.

농사 체험 예능프로그램 tvN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삼시세끼’ 에 출연한 배우 이서진과 지성. 출처=tvN 홈페이지



① 미션(과제)을 설정하라

박 대표는 미션 설정을 첫 번째로 꼽았다. 모든 사업에는 미션이 있어야 한다. 농사펀드 역시 ‘농부는 농사만 짓게 한다’는 미션이 있다.

박 대표가 농촌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빚 안 지고 농사짓고 싶다’, ‘내 철학대로 농사짓고 싶다’였다. 농부들은 농사 자금 대출을 받아 농사를 짓고, 나중에 농산물을 팔아서 갚는데, 수익구조가 낮다 보니,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가는 경우가 많다.

2013년 농사펀드 제1호 농부 조관희 씨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충남 부여군에서 쌀농사를 짓는 조 씨는 농약 중독을 앓고 난 뒤 친환경 농법으로 벼 재배 방식을 바꿨다. 하지만 판로 확보가 어려워 재고가 쌓였고, 빚만 늘어갔다. 박 대표는 조 씨에게 농사펀드를 제안했고, 2013년 410만원을 목표로 농사펀드를 모집해 투자자들로부터 239만 원(58%)을 펀딩 받았다. 2014년에는 목표액을 760만원 정해 펀드를 모집, 총 1299만 원(171%)을 투자받아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투자자들은 쌀을 추가로 받고, 콩도 얻고 들기름도 덤으로 받았다. 농부가 판로 걱정 없이 농사만 짓게 한 대가로 농사펀드는 펀딩 금액의 7~10%를 수수료로 받는다.

② 미션을 현장에서 되짚어라


농촌을 자신의 꿈을 펼칠 무대로 머리로만 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창농을 꿈꾸는 사람이면 농촌에 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박 대표는 2000년 초 농촌 체험마을 사업 일을 하면서 사업비 2억원이 달린 프로젝트 계획서를 대신 써준 일이 있었다. ‘사업비 2억이 이 농촌 마을에 가면, 마을이 잘 살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에 온갖 아이디어를 넣어 계획서를 성심성의껏 만든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2억이라는 돈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사업비 2억원에 평화로운 시골 동네는 아사리 판이 됐다. 이장이 돈을 챙겼다는 소문이 도는가하면, 체험관을 누구 땅에 지어야 하는지를 놓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박 대표는 사이좋았던 마을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원수가 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상상과는 딴 판으로 돌아갔다. 농촌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가 아니었다. 가끔 귀농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 만나 보면 현장에 안 간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잦다. 농촌 창업이라면 미션에 현실 감각이 있어야 한다. 내 사업 아이디어가 어떤 미션을 구현하려는 것인지 현장에서 되짚어 봐야 한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③ 텃세가 있다면 이유를 알아보자


귀농 귀촌했던 사람이 시골 텃세 때문에 도시로 유턴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텃세는 농촌 창업자들에게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박 대표는 “텃세가 있다면, 시작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전에 비슷한 사업자가 들어와서 일하다가 돈만 챙겨서 도망갔다거나, 태생적으로 고립된 지형이라거나, 국가 발전 전략에서 소외된 낙후지역이었거나 하는 역사가 있다는 것.

“텃세에 대한 이해 없이 사업을 시작하면 나중에 큰 변수로 다가온다. 도시에서도 비즈니스 할 때 사전 조사는 다 하지 않나? 매장을 하나 내도 인근 유동인구, 옆 가게, 가게 건물주에 대해서도 파악하는 게 정상이다. 농촌도 마찬가지다.”

④ 세대 갈등, 섬세한 접근으로 풀어라

젊은이일수록 고령자가 많은 농촌에 접근할 때 ‘전략’이 필요하다.

한 예로, 마케팅과 경영방법론으로 소상공인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대학생 전문가 동아리가 농촌에 가서 컨설팅을 시도했다가 1년 만에 활동을 접은 일이 있었다. 이유는 처음 접근 방식이 지혜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작정 마을 회관부터 찾아가, 마을 어르신들은 이들을 농활 나온 ‘젊은 일꾼’으로 본 것. 학생들은 농산물을 상품화하고,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수익사업으로 개발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재밌네, 기특하네”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표는 “마을 이장,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 농업기술 센터 임직원, 지역 컨설팅을 해주는 교수 등 마을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는 사람을 통해 학생들이 소개되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섬세한 접근은 사소하지만 굉장히 중요하다. 시골 분들이 의외로 잘 삐진다. 청년회장이나 부녀 회장부터 만난 사업자를 끝까지 만나주지 않는 마을 이장님도 있다.”

⑤ 자녀 교육 인프라, 면 단위로 찾아봐라

자녀 교육 역시 귀촌 귀농한 사람들이 고려하는 중요한 문제다. 비록 요즘 시골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이 있고, 특성화 학교도 잘 돼 있다고는 하지만, 도시와 비교해 볼 때 교육 여건이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박 대표는 “마을 단위가 아니라 면 소재지 단위로 보면 충분히 학교, 학원을 찾아낼 수 있다. 물론 교육기관까지 이동하는 데 오래 걸릴 수 있다. 이동시간 문제는 농촌이라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⑥ 귀농·귀촌 지원센터를 두드려라

지방자치단체 귀농·귀촌 지원센터에서 하는 농사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일도 중요하다. 선배 농부가 운영하는 농장에 가서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사비용과 출하 수익을 미리 가상 체험할 수 있다. 일한 품삯도 챙길 수 있고, 나와 잘 맞는 작물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박 대표는 귀농 둘째 해까지는 직접 농사를 짓지 말고 귀농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라고 조언했다.
“귀농 프로그램에 참가해 믿을 만한 선배 농부를 사귀어놔야 나중에 좋은 땅을 얻을 수 있다. ‘이 친구가 정말 농사지을 생각이 있고, 잘 할 것 같다’고 판단되면, 자기 땅을 무상으로 내어주는 농부도 있다. 농부들 심리가 공짜로 빌려줄지언정 땅을 놀리지 않는다. 반대로 처음 본 뜨내기에게 척박한 땅을 비싼 값에 내어주는 일도 흔하다.”

⑦ 사업 아이디어, 농사에 국한하지 마라

농촌도 사람 사는 공간이다. 교육, 문화, 복지, 의료 등 다양한 수요가 분명 존재한다. 사업 아이템을 농사에만 한정짓지 않았으면 한다고 박 대표는 조언했다.

경북 칠곡의 한 마을에는 ‘농민 밥집’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보통 하우스 농사를 짓는데, 하루 종일 부부가 하우스에 들어 앉아 농사를 한다. 노동력이 줄지 않게 하기 위해 밥도 집에 가서 차려 먹지 않고, 편의점 삼각 김밥이나 빵, 배달 음식으로 해결한다. 1인분에 3000원 정도 받는 마을 밥집이 생겼다. 농민들은 여기서 건강한 한 끼를 해결 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웃과 돈독한 친분을 쌓았다.

이 밖에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치료실이나 이주 여성과 함께 하는 영어교육, 전통 문화 보존 등 다양한 비즈니스 아이템이 나올 수 있다.

“농촌에는 호미질 하나로 세상 이치를 깨우친 분들이 많다. 이 분들의 인생철학에, 젊은 친구들의 좋은 아이디어와 열정이 결합하면 새로운 스파크가 일어날 일이 농촌에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2003년부터 농촌 일을 하고 있는데 농촌과 농업의 성장세가 느껴진다. 젊은 친구들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분야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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