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메르스를 막아라]<5·끝>부족한 시민의식에 구멍난 방역망
《 지난달 26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채 중국으로 출국한 10번 환자(44)는 출국할 때까지 보건당국의 관리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10번 환자의 존재를 보건당국이 뒤늦게 파악한 뒤 중국에 통보해 곧바로 격리조치에 들어가 큰 화는 면했다. 자칫 잘못해 10번 환자가 중국에서 메르스를 전파했다면 ‘한국이 동북아에 메르스를 확산시켰다’는 국제적 망신도 당할 수 있었다. 10번 환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책임은 물론 보건당국에 있다. 하지만 10번 환자의 아버지인 3번 환자(76·사망)와 누나인 4번 환자(46)가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때 자신들이 10번 환자를 접촉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면 10번 환자가 아무런 제지 없이 중국으로 출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메르스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 중 하나는 일반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감염병 대응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들의 감염 경로를 밝혀내는 역학조사는 일반 국민들의 협조가 더욱 중요하다. 역학조사의 기본이 병에 걸리기까지 환자가 경험한 상황을 조사하는 것이라 환자 진술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국내 최초 메르스 환자인 1번 환자(68)도 역학조사 때 세계 최대 메르스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역학조사 때 솔직하게 진술하지 않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기 때문에 추가 조사 과정에서 낭비되는 인력과 시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진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통화 기록과 신용카드 사용 명세 등을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나 하나쯤’ 행동 보인 자가격리자
메르스 확산을 계기로 신종 감염병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감염병이란 재난을 처음 겪다 보니 얼마나 위험한지 국민들도 잘 몰랐다”면서 “보건당국이 보건교육과 감염병 대응 캠페인 등을 강화해 국민들의 위기의식을 높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가격리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현재는 감염병 환자 등과 접촉해 감염병에 걸릴 우려가 있는 사람이 자가나 시설 격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0만 원 이하의 벌금만 물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격리 규정을 어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비해 처벌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의견이 많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처벌 수위를 높이는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병원 쇼핑이 접촉자와 감염자 수 늘려
실제로 슈퍼 전파자인 1번, 14번, 76번 환자의 경우 확진 때까지 대형 병원을 포함해 여러 병원을 거쳤다. 1번 환자는 4곳, 14번 환자는 3곳, 76번 환자는 2곳의 병원을 방문했다.
이 환자들이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계속 기다렸다면 병원이 바뀌고, 이동 경로가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접촉자, 나아가 감염자 수 증가 현상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 병원이 아닌 거주 지역의 의원급 의료기관에만 머물렀다면 접촉자 수는 더 줄어들 수 있었다.
의료계 관계자는 “건강보험 적용으로 기본적인 진료비가 너무 저렴하고, 병원 규모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병원 쇼핑이 큰 부담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병원 쇼핑, 대형 병원에 대한 막연한 선호를 줄이려면 처음부터 3차 의료기관(대형 병원)을 찾거나, 일정 기간 같은 병으로 여러 군데 병원을 돌아다닐 때는 진료비 부담을 지금보다 더 높게 하는 식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형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것을 막는 게 어렵다면 병원 간 환자 정보 공유 시스템이라도 대폭 강화해 감염병이 병원에서 병원으로 퍼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 환자가 아닌 주치의가 대신 병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주치의 제도’ 또한 감염병 확산을 막는 근본 대책 중 하나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