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뿌리부터 바꾸자]<하>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
《 최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소설 분야 1위는 지난달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은 스웨덴 출신의 칼럼니스트이자 유명한 블로거다. 그는 이 작품을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댓글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했다. 출판사가 이 블로그를 보고 책 출간을 제안했다. 이 책은 현지에서 70만 부 이상 팔렸고 독일, 영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됐다. 다산책방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소설이 문예지나 인터넷 등에 연재되지만저자가 독자의 반응을 작품에 반영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일은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미’ ‘뇌’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 출판사에 투고해 데뷔했다. 》
지난해 4월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에서 열린 제43회 런던 도서전 전시장에 문을 연 한국관. 전문가들은 한국문학이 무엇보다 다양성과 건강성을 회복해야 진정한 존재의 이유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DB
동아일보가 전문가 10인에게 한국 문학의 새로운 ‘백년대계’에 관해 문의한 결과 등단 제도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여럿 나왔다.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은 “등단 제도에서 합격증을 받기 위해선 내면의 이끌림보다 심사 요건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작품이 다양해지려면 미등단 작가 작품도 많이 발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해종 박하 대표도 “등단 제도는 문학 생태계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며 “강한 개성,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 발굴을 위해서라도 등단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이런 등단 제도를 통과한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데 비해 해외에선 출판사 투고 중심으로 다양한 직업과 세대의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로 구축된 문학권력의 폐해와 개선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이 나왔다. 민음사 대표 편집인을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해외는 문학작품의 생산 조직과 비평 조직이 결합된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만 그렇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비평 집단과 출판 자본이 분리돼 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가 내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시카고대가 출간하는 ‘크리티컬 인콰이어리’ 등은 출판사와 상관없는 독립된 비평 공간이다.
전문가들은 표절 사태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경숙 씨를 둘러싼 표절 사태가 오히려 “한국 문학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문학이 한국을 만들어 왔고, 한국의 정치적 상상력은 문학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한국 문학의 사회적 위치가 높기 때문에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작가회의는 표절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실무 협의와 공론화 절차를 밟고 있고,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도 문학 표절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신 씨의 책을 출간해온 문학동네는 25일 문학권력을 비판했던 평론가들과 자사 편집위원이 함께하는 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문학동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을 통해 문학동네가 경청해야 할 말씀을 들려주신 권성우 김명인 오길영 이명원 조영일 이상 다섯 분께 저희가 마련한 좌담의 장에 참석해 주실 것을 청한다”고 밝혔다.
김지영 kimjy@donga.com·박훈상·김윤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