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문화부 기자
실제로 중국 지린(吉林) 성 메이허커우(梅河口) 시의 혁명열사 능원에 소개된 항일투사 15명 가운데 3명이 한국인이었다. 이 중 우당 이회영 선생을 전시한 코너에서는 그가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의 역사를 세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와 관련해 광복 70주년(중국에서는 전승 70주년)인 올해 양국에서 항일 공동투쟁사를 기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독립기념관은 이달부터 중국 광둥(廣東)혁명역사박물관과 ‘황푸(黃포) 군관학교와 항일전쟁’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고, 중국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 시도 다음 달 개막하는 ‘외국인 항일열사 추모 특별전’에 한국인 전투비행사 2명을 소개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승전 70주년과 한국의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봉오동전투는 1920년 6월 7일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벌어진 첫 대규모 격돌이었다.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독립군은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고,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 승리로도 이어졌다. 이 때문에 기념식에서 공안의 감시가 중국 내 소수민족의 민족주의 움직임에 민감한 중국 정부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장백산(백두산의 중국 측 영토)과 만주지역을 여행하던 일부 한국인들이 공공연히 “만주는 우리 땅”을 외치는 모습이 중국 측을 자극한 적도 있다.
특히 항일투쟁사 연구에서도 만주지역 한인들의 활약상을 강조하는 데 대해 “너희만 일본에 맞서 싸웠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봉오동전투 기념식에 참석한 한 인사는 “중국인들에게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중국 땅에서 전개된 항일투쟁사를 바라보는 한중 양국의 시각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적을 맞아 함께 피를 흘렸다는 사실만은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만 있다면 장강(長江)의 작은 지류쯤은 문제가 되지 않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