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우선 ‘나’가 빠진 사과라는 점이다. 그가 표절을 시인한 대목은 이렇다.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표현에 대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신 씨는 ‘내가 …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반면 작품 활동을 계속하리라는 의지를 표명할 때에는 ‘나’를 강조했다. 그는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원고를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고 했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과의 기본은 유려한 문장의 나열이 아닌 단순 명료한 메시지여야 한다. 표절이 소설가에게 낙인과 다름없다지만, 기왕 사과를 하기로 했다면 나를 먼저 내세워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타이밍이다. 신 씨는 표절 의혹이 불거진 뒤 6일이 지나서야 입장 표명을 했다. 같은 사과를 하더라도 등 떠밀려서 했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인 대목이다. 2013년 탤런트 김혜수 씨는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 불과 1시간여 만에 깨끗하게 인정했다. 물론 글쓰기가 주업인 사람과 상황은 다르지만 기민한 대응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사고’와 ‘사과’ 사이의 간격이 커지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위기를 겪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위기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위기는 ‘내게만 생긴 재수 없는 일’이 아니란 뜻이다. 사과에 인색한 우리는, 사과를 패자(敗者)의 언어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 랩에이치 대표는 저서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사과는 승자의 언어이며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 위기를 딛고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은 쉽게 사과할 수 없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