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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동아일보] 원빈 · 이나영 결혼 비하인드~ 정선에서 기자와 만난 원빈 아버지가 들려준 혼사 이야기! “막내 며느리, 우리 아들만큼 유명하죠”

입력 | 2015-06-29 21:31:00


5월 중순 증권가 지라시를 통해 결혼 임박 소문이 돌던 원빈과 이나영이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원빈의 고향인 강원도 정선의 청보리밭에서 치러진 소박하고 아름다운 결혼이었다. 측근들도 몰랐을 만큼 비밀리에 이뤄진 결혼식 준비 과정과 원빈 아버지 김석산 씨가 들려준 막내 아들 부부 이야기.



지난 5월 30일 오후, 강원도 정선의 한 푸른 보리밭에서는 선남선녀의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일반적으로 즐겨 입는 검정이나 흰색이 아닌 푸른색 예복을 입고, 신부는 꽃으로 장식한 베일을 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장소를 빌려준 보리밭의 주인도, 결혼식 대기실로 사용됐던 민박집의 주인도 이날 주인공이 톱스타 원빈(38)과 이나영(36)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만큼 극비리에, 조심스럽게 준비된 결혼이었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 소문은 5월 중순 증권가 지라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나영과 친분이 두터운 지춘희 디자이너가 이나영의 웨딩드레스 가봉까지 마쳤다는 비교적 상세한 내용도 함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소속사인 이든나인과 지춘희 디자이너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소문은 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론 두 사람이 3년 전부터 열애 중이었기에 결혼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었지만 톱스타들이 소리 소문 없이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긴 시간 두 사람이 꿈꾸었던 결혼식 풍경 그대로
2003년 잠시 같은 소속사에 몸담았던 두 사람은 이나영이 2011년 원빈이 설립한 연예기획사 이든나인으로 옮기면서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소속 연예인이 둘뿐인 이든나인에서 작품에 관한 논의를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2013년 원빈이 경기도 분당신도시에 위치한 이나영의 집을 드나드는 모습이 한 매체의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교제 사실을 인정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측근은 “둘 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관심을 피할 수 없는 톱스타이고, 어떤 작품을 하든 책임이 따르는 주연 배우인 만큼 서로가 짊어진 무게감과 고민을 나누며 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으로 안다”며 “데뷔 시기도 1990년대 중·후반으로 비슷하고, 두 사람 모두 폭넓은 인간관계보다 소수의 지인과 깊게 사귀는 것을 좋아해 여러모로 잘 통한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매니저와 직계가족 정도만 알고 있던 이들의 결혼 소식은 예식 당일 한 매체의 보도에 이은 이든나인의 공식 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든나인 관계자는 5월 중순 결혼 소문을 부인했던 것과 관련해 “결혼식을 워낙 비밀리에 준비해 오던 터라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선 양해를 구한다”며 “이나영 씨의 웨딩드레스와 원빈 씨의 연미복은 지춘희 디자이너가 제작한 게 맞지만 혼전 임신설은 사실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2세를 간절히 바라는 터라 임신한 게 사실이면 굳이 부인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든나인이 배포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원빈과 이나영은 이날 강원도 정선의 이름 없는 보리밭 작은 오솔길에서 평생을 함께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자리한 푸른 보리밭을 걸어 나와 양가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뒤 하나가 됐다. 식이 끝난 뒤엔 초원 위에 가마솥을 걸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를 나눠 먹었다. 이들 커플은 만나고 사랑하고 마침내 하나 되기를 결심한 이후, 긴 시간을 그려왔던 둘만의 결혼식 풍경을 생각하며 함께 예식이 열릴 들판을 찾고 테이블에 놓일 꽃 한 송이까지 손수 결정하며 하나하나 준비했다. 결혼을 축복받고 싶은 고마운 분들이 많지만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가족들만 초대해 그들 앞에서 경건한 결혼서약을 나눴다.


원빈과 이나영은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강원도 정선 산골의 푸른 보리밭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예식비 30만원’ 민박집 주인도 당일에야 결혼식 사실 알아
지난 6월 10일 두 사람의 결혼식에 관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강원도 정선을 찾았다. 먼저 들른 곳은 원빈과 이나영이 결혼식 베이스캠프로 사용한 ‘김씨네민박’. 정선군 정선읍 덕우리 ‘삼시세끼-정선 편’ 촬영장 인근에 자리한 민박집은 경치 좋고 물 맑은 덕산리계곡과 맞닿아 있다. 시골 농가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민박집 마당에 들어서자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식에서 한몫을 한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하객들에게 국수를 끓여낸 시커멓고 커다란 가마솥 2개와 예식을 장식했던 한 다발의 하얀 들꽃이었다.

민박집 주인 김학순 씨에 따르면 원빈과 이나영이 민박집을 예약한 건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김씨는 “젊은 남자가 전화로 예약했다. 돈을 입금하겠다고 하기에 직접 와서 둘러본 후 결정하라고 했더니 며칠 전에 보고 갔다고 했다. 처음엔 대학생들이 사진 찍으러 갈 거라며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쓰는 걸로 하고 방 3개를 예약했는데 29일 금요일에 와서 돈을 주며 큰 방 2개만 빌렸다. 하루 10만원씩 3일치로 30만원을 받았다”고 당시 정황을 떠올렸다.

원빈과 이나영은 사흘간 빌린 이 집을 신랑 신부와 직계가족의 대기실 및 메이크업 · 피로연 장소 등으로 활용했다. 김씨의 목격담은 이렇다.

“5월 29일 금요일에는 주변에서 꺾어왔는지 야생화를 잔뜩 가져와서 물에 담가 마당에 늘어놨었어요. 대학생들이 뭐에 쓰려고 저러나 했죠. 그날은 3, 4명만 여기서 자고 결혼식 당일인 30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몰려 왔어요. 가시나(계집아이의 방언) 5명은 드레스 입고 머리에 꽃 달고 왔어요. 결혼식 할 때는 여자 어른 5명, 남자 어른 5명이 두 방에 나눠 들어가 화장하고 한복과 양복을 차려입고 나왔어요. 각 방에 큰 거울을 5개씩 갖다 놓고 나란히 앉아 있었고 다른 사람이 붙어서 화장을 해줬어요. 다 꾸미고 나온 모습이 참 예쁘고 멋있었어요. 그제야 잔치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걸 눈치챘죠. 잔칫날 들락날락한 차가 1백 대쯤 됐는데 고급 승용차가 대부분이었어요. 준비해온 음식도 많았어요. 계속 들락거리며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더라고요. 저한테도 갖다 줬는데 계피떡과 흰떡, 까만 떡 등 떡은 네다섯 가지였고, 김밥과 전도 있었어요. 결혼식을 마친 뒤에는 사람들이 방 안과 정자에 둘러앉아 그런 음식을 놓고 막걸리나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어요. 그 모습이 무척 정겨웠어요. 한참 놀다가 밤 9~10시에 다들 돌아갔고 방에 쌓아뒀던 짐은 다음날 와서 다 가져갔어요.”

원빈과 이나영이 결혼식을 올린 시각은 5월 30일 오후 2시로 알려져 있었지만 김씨는 “오후 4~5시에 식을 올렸다”고 기억했다. 하객수도 처음엔 50명 정도로 알려졌지만 이든나인 관계자는 “양가 부모와 직계가족만 초대한 자리라 예식 진행을 도운 소속사 관계자들을 다 합쳐도 50명이 안 된다. 실제 하객은 30~40명 정도”라고 바로잡았다.

김씨는 “처음엔 신랑 신부가 평상복을 입고 돌아다녀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힘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었다”며 “부모님은 방에 있었다. 말이 별로 없었다. 조용히 있다가 떠나면서 ‘취재하러 많이들 찾아올 거다. 고생 좀 하실 거다’라고 걱정돼서 한마디 하더라”고 전했다.


결혼식 전날 물에 담겨 민박집 마당에 놓여있던 들꽃 다발은 예식 당일 장식용으로 제몫을 해냈다.


가족과 상의해 ‘스몰 웨딩’ 결정
결혼식에 쓰인 유일한 협찬품은, 직접 가져온 가마솥 2개로는 모자라 김씨에게서 빌린 가마솥 2개뿐. 예식 장소로 쓰인 인근의 푸른 보리밭은 원빈과 이나영이 발품을 팔아 찾아낸 곳이다. 덕산리계곡 골짜기로 이어지는 맑은 동강의 지류와 깎아지른 절벽의 비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 보리밭이 있던 자리는 결혼식 다음 날인 5월 31일 농작물을 죄다 밀어내 허허벌판이었다. 때마침 이곳을 찾은 땅 주인 내외는 “결혼식 당일에도 우리 땅에서 결혼한 줄은 까맣게 몰랐다”며 보리밭이 예식 장소로 쓰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5월 10일경 한 남자가 학생이라며 저희 집을 방문했어요. 이장에게 물어 찾아온 것 같았어요. 경치가 하도 좋아서 대학생들 실습용으로 쓰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어요. 밭에 있는 농작물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망가뜨리면 보상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청보리를 5월 20일경에 다 베야 하는데, 5월 30일에 촬영해야 하니 그때까지만 베지 말아달라고 사정하기에 사진 찍으려고 그러나 보다 싶어 공짜로 빌려줬어요.”

이들 내외가 다음 날 보리를 밀러 가보니 농작물이 훼손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여기가 유명해져 차를 근처 아무 데나 세우거나 쓰레기를 두고 가는 몰상식한 관광객이 잦아진 것 외에 다른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이곳은 최근 기념사진을 찍으러 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두 중년 여성도 “대구에서 인근 옥순봉에 놀러 왔다가 원빈 씨 결혼식 장소를 구경하러 들렀다”며 “원빈 씨가 화려한 호텔이 아닌 고향땅에서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고 더 멋져 보였다”고 말했다.


결혼식 열린 보리밭에 관광객 이어져
예식의 허례허식을 줄인 원빈과 이나영의 스몰 웨딩은 두 당사가가 가족들과 상의해 준비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 이든나인 대표인, 원빈의 손위 셋째 누나 김남경 씨의 남편이자 광명시의원을 지낸 손인암 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처남 원빈이 작은 결혼식을 올린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요즘 결혼식 비용이 너무 과하니 그런 것이 싫었던 모양이에요. 장인 장모가 굉장히 검소하신데,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처남도 그렇고 처남댁도 무척 겸손하고 검소하더라고요. 좋은 취지로 하는 거니까 가족들도 찬성했죠.”

2남 3녀 중 막내인 원빈은 가족들과 우애 좋기로 소문나 있다. 원빈이 직계가족만 초대한 데는 가족을 향한 지극한 애정이 한몫했다. 이든나인 관계자는 “원빈 씨가 결혼식을 하며 누구보다 자신을 묵묵히 믿고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온 마음을 다하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원빈은 고향에 대한 애정도 각별한 편이다. 자신이 주연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특별 상영 기회가 생겼을 때도 정선 시골 마을에서 열릴 수 있게 애쓴바 있다. 손씨도 “처남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촬영지로 정선을 많이 추천한다”면서 “마음이 따뜻한 처남과 처남댁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INTERVIEW
정선에서 만난 원빈 아버지 김석산 씨
“막내까지 짝을 지어주고 나니 이제 맘이 놓여요”

취재의 마지막 코스로 정선군 여량면을 찾아 원빈이 2008년 부모에게 선물한 ‘42번 루트하우스’와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고향집을 둘러봤다. 건축가 곽희수 씨가 설계한 독특한 디자인의 42번 루트하우스는 2008년 한국건축 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한 후 정선의 관광 명소가 됐다. 인근 주민들은 ‘“원빈의 부모가 두 집을 오가며 지낸다”고 일러줬다. 하지만 어느 집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이웃 주민은 “내외가 아까 나가더라. 건강 체조를 하러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원빈 부모가 오기를 기다리며 이웃 주민들을 만나 좀 더 얘기를 나눴다.

어릴 때부터 원빈을 봐왔다는 한 주민은 “원빈의 어릴 적 이름이 ‘반석’이었는데 크면서 ‘도진’으로 개명했고 지금은 다들 ‘원빈’으로 부른다”며 “원빈이 와도 본 적이 거의 없다. 집에 다녀간 줄 모를 때가 많다. 평상복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고, 잘 돌아다니지도 않는다”고 했다. 또 “원빈이 성공해선지 그 집 부모가 이 동네에 땅을 많이 샀는데 직접 다 농사짓지는 않고 주변 텃밭만 가꾼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부쳐 먹게 빌려줬다”는 말도 덧붙였다. 원빈 아버지와 친분이 있다는 또 다른 이웃은 “원빈이 어릴 때도 예쁘장했는데, 도회로 나간 뒤에는 통 못 봤다. 원빈 아버지와 친해 원빈의 형과 누나 결혼식에도 참석했는데 원빈 결혼식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었다”며 “부모가 여기 토박이인데 동네에서 인심이 좋다. 원빈 아버지가 말수가 적은데 그래도 보면 반가워하고 그런다”고 전했다.

동네를 둘러보던 와중 고향집에서 원빈의 부모를 극적으로 만났다. 부친 김석산 씨는 나이가 들긴 했어도 눈매가 선한 미남으로 원빈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걸 한눈에 알게 했다. 취재진이 하도 찾아와 이들 부부가 피해 다니고 문도 안 열어준다는 얘기를 주민들로부터 이미 들은 터라, 인기척도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문을 따고 들어가는 원빈의 부모와 절묘한 타이밍에 마주쳤음에도 모질게 내칠까 싶어 내심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자 이들 내외의 표정에 불편한 기색이 보였다. 그럼에도 어머니 이월순 씨는 종일 더위를 먹은 기자에게 시원한 물을 유리잔에 가득 담아 내줬다. 거실 창문마다 블라인드를 쳐놓아 집 안은 어두웠지만 두 사람이 쓰기에 불편함이 없는 구조였으며 살림살이는 소박했다. 거실 한쪽 모퉁이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부친 김씨는 기자가 결혼식 얘기를 꺼내려 하자 “숨 쉬기가 편치 않다. 이제 몸도 좋지 않고 할 얘기도 없다. 돌아가라”며 밖으로 나갔다. 김씨를 따라 양해를 구하고 길가에 서서 대화를 나눴다.


(위) 원빈과 이나영이 5월29일부터 사흘간 결혼식 베이스캠프로 사용한 민박집.(아래) 원빈이 2008년 부모에게 선물한 ‘42번 루트하우스’.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해 정선의 관광 명소가 됐다.


건강이 안 좋으신가요.
진폐증이에요. 예전에 탄광에서 20년을 일한 것 때문에 생긴 후유증이죠. 불순물과 먼지, 탄가루가 꽉 박혀서 폐가 망가지는 병이거든요.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는데도 숨이 차요. 정밀검사도 많이 받았는데, 이 병은 평생 가지고 가는 병이라 고치지도 못하고 차츰 악화가 되는 거예요. 숨이 차서 이제는 말도 잘 못하고, 오르막에도 올라가지 못하겠어요. 집에서도 힘든 일을 못하고 그냥 이래 지내요. 농사지으려고 해도 힘이 없어서 밭도 남이 부치고 그런 실정이에요. 지금은 조그맣게 농사지어요. 힘이 없어서 운동도 못해요. 내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아이들이 잘합니다.

자식들이 서울로 모시고 싶어할 것 같아요.
여기서 오래 살았죠. 이 나이에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도시에서 못 살아요. 아파트에서 갑갑해서 어떻게 살아요.

막내아들마저 짝을 지어줘서 마음이 놓이시겠어요.
마음이 놓이죠. 아들이 결혼했으니 부모로서는 좋죠. 딴 걸로 표현할 수 있겠소? 말로 다할 수 없죠. 자식 결혼시키는건 당연하고, 이제 행복하게 사는 거 바라는 거지 다른 게 있습니까.

원빈 씨가 부모님께 자주 연락하나요.
네.

원빈 씨가 아버님을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뭐 닮았겠죠. 저 좀 닮았죠.

젊으셨을 때 아버님 인기 많았을 것 같아요.
인기라는 거 없었어요. 전혀. 남이 볼 때는 어떤지 모르지만 사실 재미가 없는 사람이죠. 원래 말이 없고 내성적이라서 대화가 잘 안 됩니다.

자식들한테 잔소리도 안 하시나요.
다 컸는데 잔소리하면 뭐 합니까. 지들이 알아서 해야죠. 제가 잔소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다 착해요. 잘해요.
원빈 씨도 내성적인 성격인데 연기를 참 잘하는 게 신기해요.
남이 볼 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성적이면 사회생활할 때는 발전성이 없다고 봐야죠.
그래도 원빈 씨가 연기자로 성공해서 기쁘시죠?
그거야 말해 뭣하겠어요. 자식이 잘되는 걸 원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원빈 씨 태몽이 특별했나요? 기억하세요?
그런 게 어디 있었겠어요. 아이들 어릴 적에는 없이 살아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저런 생각을 해볼 겨를이 없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원빈 씨가 생겼나요.
우연히 참…. 허허. 당시에는 먹고살기 바빠서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일만 했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학교에서 돈 달라, 육성회비 가져와라 하니까 그거 대기 바빴어요. 아이들 먹여 살리려니 할 수 없이 지하 막장에 들어가서 일하고 그랬죠. 참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 내 몸이 병들어 맘대로 활동하지 못하니 세상 사는 게 힘드네요. 아이들 다 잘 커주고, 불화 없이 잘 지내서 고마울 뿐이에요.

원빈 씨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스타인데 알고 계시나요.
팬들이 다 도와주고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그 덕분에 잘되는 거지요.

이나영 씨도 아주 유명한 스타예요.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어요. 원래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

막내며느리, 마음에 드시나요.
지나봐야 알죠. 아직은 어떤 평가를 하기가 일러요. 지금은 마음에 들어요. 좋아요. 잘하겠지요. 잘할 것 같아요. 제가 봤을 적에는(웃음).


40여 분간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뒤 원빈의 부친 김씨는 “안녕히 가세요. 기사 잘 써주세요”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집 처마 기둥 끝에 새겨진 복(福)자가 눈에 들어왔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 집의 주인 김씨의 성정이 이 가정과 자식들의 삶에 복을 부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지호영 기자, 이든나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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