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신영석은 현대캐피탈 선수가 됐다. 그러나 원칙을 훼손하는 절차에 여러 구단들이 반발하는 등 생채기는 남았고, 한국배구연맹(KOVO)의 리더십은 훼손됐다. 스포츠동아DB
‘우리카드 선수영입불가’ 구단간 약속 깨
현대캐피탈 비밀 트레이드로 신영석 영입
선수등록 법원 가처분신청…법으로 해결
“KOVO 권위 흔든 선례” 타구단들 비난
26일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선 한국배구연맹(KOVO) 제11기 제9차 이사회가 열렸다. 3시간 가량 진행된 이사회 동안 격론이 오간 것은 6번째 기타 안건이었던 ‘신영석 비밀 트레이드’ 처리 문제였다. 모 관계자는 “무협지를 연상시켰다”며 뜨거웠던 이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V리그의 뜨거운 감자였던 신영석의 신분은 KOVO와 이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긴 채 결론이 났다. 이번 결정으로 문제가 완전히 봉합됐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 얽히고설킨 신영석의 신분
이날 이사회 전부터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현대캐피탈이 신영석의 선수등록과 관련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이사들의 모임에서 신영석의 군 제대 후 소속팀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한 뒤였다.
관건은 KOVO 선수등록 규정 제10조 제2항 ‘병역의무를 마친 선수는 병역의무 개시 당시의 소속구단 또는 그 구단의 권리 및 의무를 승계한 구단으로만 인정된다’는 조항이었다. 신영석을 일단 우리카드로 복귀시킨 뒤 현대캐피탈로 이적시키라는 것이 반대 측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이 조항이 군복무 중인 선수의 이적을 제한하는 취지가 아닐뿐더러 우리카드와 현대캐피탈이 트레이드를 통해 권리를 양도·양수했기 때문에 이적등록과 공시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윤리적으로는 비난받을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KB손해보험(구 LIG손해보험)과 현대캐피탈이 4월 9일 발표했던 2대1 트레이드(정영호·&노재욱-권영민)도 신영석 처리 문제와 연결됐다. 정영호는 트레이드 발표 후 군에 입대했다. 당시는 KOVO의 공시 기간이 아니었다. 신영석이 우리카드 복귀 후 트레이드라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경우 이 2대1 트레이드는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남는다.
게다가 신영석은 내년 1월 제대하는 시기가 큰 변수다. 그 때는 2015∼2016시즌 5라운드 도중이다. KOVO의 규정상 선수이적은 4라운드를 끝으로 금지된다. 군입대 선수가 원 소속팀에 복귀하는 것만 가능한 기간이다. 신영석은 올 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5라운드부터 뛰면 가능하다.
그래서 현대캐피탈은 신영석을 6월 30일 선수등록 마감 때까지 소속선수로 만드는 데 집착했다. 공시를 위한 등록서류도 5일 제출했다. KOVO는 이사회에서 결론이 날 때까지 등록을 미루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방침을 전해들은 현대캐피탈은 가처분신청을 냈다. KOVO가 아닌 외부에서 법으로 해결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법원은 KOVO의 규정을 법리대로 해석해 현대캐피탈의 손을 들어줬다.
● 여자팀에서 강력히 반발했던 이유는?
신영석의 신분 처리를 놓고 뜻밖에 여자팀에서 강력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왜 KOVO 내에서 해결할 문제를 밖으로 가지고 나갔느냐”는 것이었다. “앞으로 분쟁이 생기면 구단과 선수 누구나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들 경우 막지 못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고, 이사회와 KOVO, 총재의 권위를 흔드는 행동”이라며 현대캐피탈의 행태를 비난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생긴 문제를 이사회에서 조율하지 못한다면, 이사회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사안을 더 미루면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고 판단한 KOVO는 결국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현대캐피탈의 손을 들어줬다. KOVO는 “우리카드 소속 신영석 선수의 현대캐피탈 이적과 관련해 법원의 판결 등을 존중해 신영석 선수의 이적을 인정하고 공시키로 했다. 향후 연맹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 법적인 소송 등이 아니라 이사회에서 최대한 협의해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키로 했다. 규정 개정 등을 통해 제도를 보완하고 동일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맹에서 최대한 노력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일단은 현대캐피탈에 유리한 결정이지만, KOVO가 받은 상처는 컸다.
구단들이 이번 사례를 계기로 더욱 KOVO를 흔들 가능성도 있다. 어느 구단의 단장은 “앞으로 법대로 하자”고 말했다.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허점투성이인 KOVO의 규약은 말썽의 소지를 여전히 안고 있다. 만일 또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허점을 찾아낸 뒤 이번처럼 법으로 해결하려고 나선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크다. KOVO는 그래서 진퇴양난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