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하지현 교수. 사진제공|건국대학교
■ 20대, 왜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져드나?
‘확률 게임’·‘머리가 좋다’는 생각은 착각
젊을수록 빠른 만족 위해 고위험도 감수
사행성 도박 전전…‘멀티플 현상’도 발생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하지현(사진) 교수는 “도박에 대해 생각할 때, 사회적 폐해와 의학적 관점, 두 가지로 나눠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관점에선 국가가 허락한 도박은 해도 괜찮다. 도박자금이 세금으로 거둬지기 때문이다. 또 개인의 파산을 막기 위해 베팅 액수도 제한된다. 문제는 음성화된 불법도박이다. 수익이 공익적으로 쓰일 리가 없고, 개인을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 심지어는 설령 땄다고 하더라도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불법도박을 추방하는 데 국가는 총력을 기울인다. 반면 오직 도박에 몰두하는 환자의 심리상태에만 집중하는 의학적 관점에선 합법도박과 불법도박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다. 불법도박을 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도박에 빠지는 사람은 카지노의 주체가 어디냐에 관계없이 큰 돈을 벌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져드는 것일까. 특히 젊은층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회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현 교수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도박중독자들은 자신들이 도박을 잘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끊기가 더욱 어렵다. 하 교수는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머리도 좋고, (도박에 관한) 공부도 많이 한다. 확률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도박이 과학이라고 믿으니, 잃어도 다음에 잘만 베팅하면 딸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 교수는 “그러다 경제적 곤궁에 빠지거나 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치료의 틀 안에 들어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루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환상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젊고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일수록 탐닉”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도박이 만성화되는 것이고, 불법 스포츠 도박에까지 손을 뻗친다. 심지어는 경기인들을 가담시키는 승부조작까지 불사하게 된다.
● 젊은층이 더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이유
하지현 교수는 “도박에 빠지기 쉬운 속성은 연령이 아니라 기질”이라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젊은층이 좀더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봤다. 첫째, “나이가 들수록 대개 사람은 보수적이 된다. 젊기 때문에 좀더 빠른 만족을 원하고, 고수익을 위한 고위험을 감수한다. 젊은이들의 일반적 성향인데, 도박에도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둘째, “나이 든 사람에 비해 젊은층은 불법을 저질렀을 때 잃을 게 적다. 사회적 지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을수록 더 쉽게 행위에 빠져든다”고 지적했다.
흔히 ‘불법 스포츠 도박은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접근할 수 있어 젊은층이 더 취약하다’는 견해에 대해 하 교수는 “도박하는 사람들은 접근성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접근 가능성이 높을수록 도박에 빠져들 위험성도 높아지지만, 그렇다고 젊은층이 꼭 더 그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 교수는 “사설 경마장에 가보면 아저씨들의 비중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 불법 스포츠 도박의 종착역은 패가망신
물론 불법 스포츠 도박도 일시적 재미로 시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반적 경로로 볼 때, 불법 스포츠 도박은 도박 중에서도 ‘막장’에 속한다. 게다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다가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도박이나 카지노를 병행하는 ‘멀티플(multiple) 현상’도 곧잘 발생한다. 건전한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기보다 도박을 통해서 하루 만에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현실은 엄혹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