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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BGM의 선구자 사티 서거 90주년

입력 | 2015-06-30 03:00:00


에리크 사티

지난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데 갑자기 ‘도라지 타령’이 들려왔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카페 연주단에게 일행이 ‘한국음악’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운하의 도시에서 고국 민요를 듣는 느낌이 묘했습니다.

누군가가 “커피 마시는데 ‘브금’ 죽이네!” 했습니다. “브금이 뭐예요? 불금도 아니고?” “아, BGM 말이에요. 백그라운드 뮤직(배경음악)!”

오늘날 어디에나 음악이 있습니다. 카페에서도, 숙녀복이나 구두 매장에서도 흥겹고 달콤한 선율이 들려옵니다. 이른바 BGM입니다. 오디오의 보급 덕에 연주자가 매번 수고하지 않아도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된 덕이죠.

19세기에만 해도 ‘배경음악’이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물론 하이든 모차르트 이전 시대의 지체 높은 귀족들은 음악가들을 고용해 음악을 연주시키고 손님들에게 저녁을 대접했죠. 하지만 이후 ‘정신적 영웅인 고귀한 음악가’라는 콘셉트가 확산되면서 음악 감상은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음악 연주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 한 사람이 프랑스의 에리크 사티(1866∼1925)입니다. 그는 ‘가구(家具)음악(Musique d‘ameublement)’이라는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가구가 그렇듯, 있는 듯 없는 듯 잘 모르게 들려오는 음악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죠. 오늘날 어디서나 음악이 들려오는 현대인의 환경을 그가 본다면 껄껄 웃으면서 “봐, 음악이 가구나 마찬가지지!”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피아노곡 ‘세 개의 짐노페디’로 사랑받는 사티의 음악은 그야말로 가구처럼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합니다. 간결하고 순수하면서도 날카로운 비례를 갖춘 점이 사티 음악의 특징입니다. 그런 ‘아티스틱’한 예술가가 20대에 파리 빈민가에 들어가 복지사업에 힘썼던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의 또 다른 일면입니다.

7월 1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90년 되는 날입니다. 이번 주에는 그의 피아노곡을 종일 들어볼까 합니다. 비록 제목은 ‘바싹 마른 태아’ ‘개를 위한 엉성한 전주곡’ 등 엉뚱한 것이 많지만, 모두 귀를 거칠게 긁지 않는 편한 작품들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