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낙선재 일반 개방… VVIP급 객실서 하룻밤
문화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될 수 있을까. VVIP급 객실로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창덕궁 낙선재 권역의 석복헌.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의 처소로 지은 이곳은 다른 궁궐 전각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았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문화재청은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1912∼1989)와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1901∼1989)가 1989년까지 살았던 창덕궁 낙선재(樂善齋) 일대의 전각을 VVIP급 객실로 꾸며 숙박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또 최근 복원된 경복궁 내 외소주방(外燒廚房)을 본래의 기능을 살려 조리가 가능한 시설로 개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재로만 보존돼 오던 궁궐 내 일부 전각을 개방함으로써 관광 등에 적극 활용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는 훼손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 안은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빠르면 2017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문화재 훼손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낙선재의 여러 전각 가운데 보물 제1764호로 지정된 본채 건물은 개방을 하지 않고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궁스테이 객실로 추진 중인 전각은 석복헌과 수강재로, 낙선재 권역에는 포함되나 잦은 증개축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다. 문화재청은 두 전각에 냉난방 시설과 화장실을 갖춰 꾸밀 예정이다. 경빈 김씨의 생활공간이었던 석복헌은 168년 묵은 목조건물. 이중의 행각으로 둘러싸여 포근한 느낌을 준다. 대청마루를 지나면 가로, 세로 약 5m 크기의 안방이 나오고 한쪽에는 여종이 머무르는 윗방이 딸려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예부터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곧 폐가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문화재도 활용을 통해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문화재 활용과 보호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궁궐이나 고성(古城), 수도원 등을 숙박시설로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영국의 문화재 보호기관인 내셔널트러스트는 1666년 지어진 클리브덴 성(城)을 하루 숙박료가 최대 300만 원이 넘는 고급호텔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은 호텔 전문업체가 38개 객실을 운영하는데 연간 숙박객이 1만2000명에 이른다. 스페인 역시 그라나다와 세고비아, 톨레도 등 유서 깊은 도시의 고성과 수도원, 요새 등을 개조한 ‘파라도르(parador) 호텔’을 93개나 운영하고 있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건축학)는 “우리나라도 문화재를 더이상 화석화하지 말고 국민들의 삶과 함께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