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4부 : 고장난 세금제도]<1>탈선하는 부가가치세
○ 부동산 업자부터 성형외과까지 탈세
올 들어 주택 거래가 늘면서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잘나가는 중개업자’들이 중개수수료를 실제보다 적게 신고해 부가세를 탈루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자영업자인 박상욱(가명·49) 씨는 올해 강남의 한 아파트를 매입한 뒤 중개수수료 500만 원을 중개업자에게 건넸다. 중개업자는 “수수료로 450만 원만 받았다고 세무서에 신고할 테니 눈감아 달라”고 말했다. 영업이 잘돼 일반 과세자로 분류돼 있어 수수료의 10%를 부가세로 내야 하는 이 중개업자는 부가세를 적게 낼 요량으로 수수료를 낮춰 신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 씨는 “수수료 축소 신고를 눈감아 주지 않으려면 중개수수료로 50만 원을 더 달라고 해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한류 병원’으로 유명한 서울의 A성형외과는 홈페이지 정보 중 수술비 항목을 아예 뺐다. 2011년 7월부터 코 수술, 주름살 제거술, 사각턱 교정술 등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에 대해 단계적으로 부가세가 부과되자 이 병원 원장은 매출을 줄여 신고하려고 수술비를 비공개로 돌린 것이다. 실제 이 병원 대기실에는 ‘현금 결제 시 부가세 할인’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김모 씨(30·여)는 “올 들어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코 필러 시술을 받고 시술비 147만 원을 전액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전했다.
○ 소비자는 면세 효과 못 누려
이처럼 부가세 탈세가 심각하다 보니 부가세 감면 혜택은 국민이 체감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사라지고 있다. 업체들이 신제품 개발 등 여러 이유를 대며 소비자 가격을 다시 올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고 양육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2009년 1월 분유와 기저귀에 대해 부가세를 면제한 데 이어 2012년 2월에는 산후조리원 이용 요금에 매기는 부가세를 없앴다.
산후조리원의 경우 2012년 2월 부가세 면제 이후 서울 시내 120개 업체 가운데 48개 업체만 요금을 내렸다. 나머지 72개 업체는 요금을 동결하거나 인상했다. 일부 산후조리원은 부가세 면제 전 가격을 올렸다가 부가세 면제 후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일반 고속버스 요금에 붙는 부가세는 올해 4월부터 면제됐지만 아직까지 요금은 그대로다. 버스 업계는 “요금을 인하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도 요금을 올리지 않고 동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업체들은 부가세가 면제될 때는 제품 가격을 잘 내리지 않으려 하는 반면 부가세가 새로 부과될 때는 즉각 가격을 올리고 있다.
자동차운전학원 교습비는 부가세가 부과되기 전부터 가격 인상 방침을 소비자에게 알리다가 2012년 7월 부가세가 부과되던 시점에 교습비를 바로 10% 올렸다. 서울 A자동차학원의 1종보통 면허 교습비는 2012년 6월 73만 원에서 7월 80만3000원으로 인상됐다. 최근 1종보통 교습비가 45만∼50만 원 선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운전면허 간소화 조치로 도로주행 교육시간 등이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시간당 교습비는 그대로다.
도움말 주신 분들(가나다순)
△김기흥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장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성태 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 △김익래 성균관대 초빙교수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반장식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유경문 서경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손영일·홍수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