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엑스플렉스 기획편집팀장
(절반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집 욕심이 없다. 하지만 서른이 되면 집은 없더라도 적어도 뭔가를 이루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 비슷한 거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뭐 그것까진 안 바라더라도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며 정답 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간의 경험상 내 인생이 그리 술술 풀릴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두꺼운 안개일 줄은 몰랐던 거다.
답답한 날이 많았다. 매달 마지막 날 월세랑 적금만 겨우겨우 내다가 죽는 건가 싶어 무섭기도 했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자기계발…이라도 해야 하나?’
한국에서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문화 산업화되었는데, 지식이나 물리적인 기술을 익히는 것에서 나아가 성격, 습관, 심리, 자기정체성까지 건드리며 사람들을 파고들었다.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자기계발을 못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며 자기계발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만큼은 친구의 이전 직장 사장과 생각이 같다. 자기계발은 자기가 알아서 할 것,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 자기계발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태어나기 위해 바쁘지 않은 사람은 죽기에 바쁘다.” 밥 딜런의 노래가사 중 일부다. 대중가요이지만 자못 그리스 철학처럼 들린다. 요새 바쁘다는 친구들과 약속 한 번 잡을라치면 몇 번을 미루는 게 기본인데, 뭐하느라 그리 바쁘냐고 물으면 다들 하는 말은 같다. “그냥 정신없이 바빠” 내지는 “나도 내가 뭐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렇게 뭘 하는지 모르겠다면 “너는 일을 잘하고 있는 거”라는 농담 같은 진담. 아뿔싸, 나 죽느라고 바쁜 거야? 자기계발이라는 말을 여기에 가져다 쓰는 게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기계발을 하면서 내 소중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자기계발은 어떤 것일까. 외국어를 배우는 것? 자격증을 따는 것? 나는 올빼미형인데 굳이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패기 있게 미래를 상상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지 않으냐는 말들도 들려온다. 그러나 이런 건 할 수 있는 젊은이가 하게 내버려 두자. 더 중요한 것은 주지했다시피 바로 ‘자기’다.
변변한 자기계발서 하나 읽은 적 없는 나와 내 주변인들은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공자님 말씀이 무색하게 아직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쩔쩔매며 방황 중이다. 그럼에도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곧 다 좋아질 거”라는 말 속에서 진짜로 괜찮은 나를 발견하고 문득 자신을 긍정하며 자기계발을 이상한 방식으로 실천 중이다. 이런 게 자기계발로 느껴지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건 음… 기분 탓이다.
임유진 엑스플렉스 기획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