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세사 클리너 개발해 세계시장 정복
이영규 웰크론그룹 회장이 극세사로 만든 알레르기 방지 침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극세사를 의류가 아닌 다른 용도로 개발하면 사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극세사의 부가가치에 눈을 뜬 이영규 웰크론그룹 회장(56)은 다니던 무역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는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마치고 동양나일론(현 효성)에서 극세사를 개발한 경험이 있었다.
1992년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2000만 원을 빌려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 은성코퍼레이션을 세웠다. 부친의 세탁비누 사업 실패로 생활고를 겪었던 모친은 반대했다.
극세사로 걸레, 행주 같은 클리너를 만들기로 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극세사를 생산했으나 블라우스, 인조 스웨이드 등 의류에만 쓰고 있었다. 극세사 B급 원사를 구해 임가공업체에 맡겼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극세사 청소용품을 내놨지만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직장생활 때 창업하면 제품을 사 주겠다고 했던 사람들마저 외면했다. 사업 시작 4개월 만에 매출 부진에다 거래업체 부도까지 겹쳐 자금이 바닥났다. 아내는 생활비를 벌려고 보험설계사로 나섰다.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다 암자를 찾아 1000배를 했다. 온몸이 아프고 일어설 힘조차 없었지만 복잡하던 머릿속은 백지처럼 비워졌다. 한번 실패했다고 좌절한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주위 사람에게 돈을 빌려 다시 출발선에 섰다.
극세사 클리너 세계서 두 번째로 만들어
해외에서 첫 오더를 받자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그때 면 제품만 생산하던 한 업체 사장이 극세사로 만든 타월 같은 제품을 보여 주며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유럽 바이어의 주문이라고 했다.
물이 굴러 떨어지는 일반 극세사 원단과 달리 물을 빨리, 그리고 많이 흡수하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면을 극세사로 대체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으나 완전히 달랐다. 6개월간 밤낮 없이 매달린 끝에 원단의 구조를 바꾸는 새 가공법을 개발했다. 물을 면보다 5배나 많이 흡수하는 극세사 클리너(T-101)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었다.
日기업 제치고 3M과 독점공급 계약
1998년 미국에서 열린 클리너 전시회(ISSA)에서 세계적 기업인 3M 구매 담당자를 만났다. 거래를 트려고 요구하지도 않은 샘플을 3M에 계속 보냈다. 몇 달 뒤 한국3M에 보내면 검토해 보겠다고 알려왔다. 천재일우의 기회라 생각해 새 샘플을 만들어 한국3M의 문턱이 닳도록 찾았다. 하지만 클리너의 모양, 색상, 성능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3M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았다. 품질을 높여 가며 1t 트럭 3대 분량의 샘플을 2년 넘게 보낸 끝에 2000년 일본 기업을 제치고 3M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웰크론의 극세사 클리너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투자도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해외 성공을 토대로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된 극세사 청소용품에 더해 목욕용품, 집먼지진드기의 서식과 이동을 차단하는 침구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2001년 ‘세사(SESA)’ 브랜드로 백화점에 입점한 뒤 대리점 사업에도 나섰다.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너지 효과가 예상되는 기술력 있는 제조업체를 인수한다는 원칙에 따라 2007년 예지미인, 2010년 한텍엔지니어링, 강원비앤이를 사들였다.
“일자리 창출로 사회에 기여하고 고객에게 새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가가 되겠습니다.”
극세사 클리너로 시작해 매출 2000억 원대 중견 그룹으로 키운 이 회장의 꿈, 100년 넘게 가는 장수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김상철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