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향을 지닌 체리 세이지와 쑥갓 꽃을 식탁에 함께 꽂았다. 향기를 품은 꽃은 부엌을 지켜 주는 좋은 방향제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그런데 반복해 이 정원을 찾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채소를 키우는 정원에 왜 이토록 많은 꽃을 보는 식물과 허브를 심었을까? 처음엔 텃밭 정원을 예쁘게 꾸미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했지만 차츰 그렇다고 보기에는 그 양이 채소보다 오히려 많아 보인다는 게 이상했다. 혹시 이 많은 꽃과 허브를 심었던 것에 다른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날 나는 드디어 그 이유를 부엌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셰익스피어 시절의 영국의 부엌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벽에 돌로 만든 대형 취사용 난로가 있고 주변으로 선반이 즐비하고 바닥은 돌을 깐 흙바닥이다. 식사 때가 되면 주부들은 난로에 불을 놓아 그 열로 주식인 수프를 끊이거나 고기를 구웠다. 그런데 영국 집은 각 방에 있는 난로가 유일한 난방기구여서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가능하면 창문을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창문이 이렇게 작으니 집안은 늘 환기가 문제였다. 특히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의 찌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주부들은 많은 애를 썼고 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향기 나는 식물을 부엌에 두는 일이었다. 각종 민트와 세이지 등은 잎과 줄기를 꺾어 매달아 두면 마르면서 향기를 뿜어낸다. 방향제로서 더할 나위 없는 역할을 해 주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고기나 생선요리를 할 때는 이 마른 허브를 넣어 음식 자체의 냄새를 줄이는 효과까지 보게 된다.
이렇게 부엌으로 꽃을 가져오고 허브를 말려 향기를 집안에 들였던 전통은 훗날 전문적으로 식물의 잎 열매 꽃을 그릇에 담아 향기를 내는 ‘포푸리’로 발전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중세 유럽의 도시에는 꽃을 파는 행상이 많았다고 한다. 시골의 아가씨들은 야생의 꽃과 허브를 꺾어 바구니에 담은 뒤 꽃을 팔러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집에서 직접 식물을 재배할 수 없는 주부들은 이런 행상에게서 꽃을 사 부엌과 집안을 장식했던 셈이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유럽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게 된다. 식료품을 파는 곳에서 한결같이 꽃을 파는 것이다. 이 역시도 그들에겐 꽃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이었던 전통에 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꽃을 꺾어 집안으로 들였던 전통은 없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간섭하지 않았던 우리의 문화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바뀌어 버린 환경에서 유럽인들이 겪었던 환경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병든 건물 중후군(Sick building syndrome)’이라는 증상을 세계보건기구가 인정할 정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우리도 인공 방향제를 늘 쓰기도 한다. 하지만 화학적으로 만든 방향제가 천연의 식물향기보다 나을 리 없다. 작은 베란다지만 이곳에서 내가 직접 키운 꽃을 매일 아침 밥상 위에,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방향제가 된다.
방향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 주는 식물을 추천하라면 역시 강한 향기를 뿜어 주는 식물인 민트, 세이지, 딜, 로즈메리와 같은 지중해 지역이 자생지인 허브다. 물 빠짐이 좋고 영양이 풍부한 원예 상토에 식물을 심고 화분은 이왕이면 진흙으로 만든 테라코타를 사용하면 자생지의 느낌을 더 잘 살릴 수 있다. 단 테라코타 화분은 수분의 증발이 심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화분보다는 물 주는 양과 횟수를 좀 더 늘려 주는 것이 좋다. 또 지중해라는 자생지에서 짐작이 되듯 허브는 햇볕을 좋아해 아파트라면 햇살이 잘 드는 앞 베란다가 가장 적합하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