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일어났을 땐 나는 한국 국민이 돼 있었다. 이번엔 남쪽의 분노를 목격했다. 남과 북은 서로가 아프게 당한 상처만 뼈에 새기고 있었다.
남쪽은 2해전이 북한의 선제 포격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1해전에서 교전이 시작된 상황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들이 있다. 국방부는 북한 중형 경비정이 먼저 기관포를 쏘았다고 발표했지만 북한군이 수류탄을 던져 교전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숫자상 열세인 북한 함정들이 무모한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북한 함정들의 배수량을 합쳐도 현장에 출동한 한국 초계함 한 척의 배수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충돌 과정에 힘에서 밀려 화가 난 북한 병사들이 흩어진 반찬용 염장 무를 닥치는 대로 집어 한국 함정에 던졌는데 이를 수류탄으로 오인한 한국군이 사격하면서 교전이 시작됐다”고 한 황해남도 간부의 증언(자유아시아방송 2013년 9월 5일자 보도)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1해전의 가장 큰 책임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에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누가 먼저 쐈는지도 명확해야 한다. 만약 북한이 자기들이 먼저 맞았다고 인식했다면 우리는 보복 공격을 대비해야 했다.
전투복 차림이 아닌 러닝셔츠를 입고 충돌에 열중하다가 예상치 못한 교전으로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수많은 동료를 잃은 북한 해군의 복수심은 2해전으로 이어졌다.
1해전 때 북한 주민들은 어땠을까. 북한 해군 기지로 원호물자를 갖고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당시는 군인들의 도둑질이 기승을 부려 부모들이 아이에게 “군대만 나타나면 무조건 문을 잠그라”고 주문하던 때였다. 그렇게 북한군을 ‘공산비적’ ‘토벌대’라고 멀리하던 주민들이 정작 전투가 벌어지자 “배부르게 먹고 꼭 이기라”고 달려가 응원한 것이다. 황해남도 옹진에서 분위기를 목격했던 한 지인은 “앞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지니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더라”며 “아무리 군을 욕해도 전쟁이 나면 똘똘 뭉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북 간 교전이 벌어지면 사이좋게 어울려 지내던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도 군을 찾아가 한국에 본때를 보여주라고 응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웅에 대한 태도는 남과 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북한은 주요 훈장은 누구나 알아보고 영웅에겐 본인과 가족에게까지 배려와 존경을 표한다. 하지만 나는 남쪽에서 13년째 살면서도 훈장 종류와 등급을 잘 모른다. 훈장 달기 쑥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무공훈장을 알아볼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전투가 벌어져도, 단순 사고가 나도 천편일률적으로 보상금 액수부터 세는 사회가 나는 안타깝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에 우리가 맨 먼저 바쳐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잊지 않는 존경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땅에 전투 영웅이 늘어나는 걸 원치 않는다. 남북엔 명령에 따라 목숨 바칠 각오를 가진 청년들이 살고 있다. 남쪽엔 2해전에서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타기를 틀어쥔 한상국 중사가 있다. 북한은 1해전 때 물에 잠겨 죽을 때까지 기관총 방아쇠를 당겼다는 병사를 영웅으로 내세운다. 이런 희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서로 적개심과 복수심을 불태우며 이기고 지고를 거듭할 때마다 누군가의 귀한 자식과 남편, 형제가 가슴 허비는 아픔을 남기고 죽어간다. 언제면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이 지긋지긋한 증오와 복수의 악순환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연평해전’을 보고 나오며 든 먹먹한 생각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